지난 3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2022년 한국시학상‧경기시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 상은 (사)한국경기시인협회와 계간 ‘한국시학’이 마련했다.

올해의 한국시학상 수상자는 윤채한(대상), 김애자(본상) 시인이고 경기시인상은 고은영‧고정현‧조경화 시인이 받았다.

2022 한국시학상 수상자 김애자 시인(오른쪽)과 윤채한 시인(왼쪽). 가운데는 임병호 ‘한국시학’ 발행인. (사진=최영선 시인)
2022 한국시학상 수상자 김애자 시인(오른쪽)과 윤채한 시인(왼쪽). 가운데는 임병호 ‘한국시학’ 발행인. (사진=최영선 시인)

대상을 받은 윤채한 시인은 30년쯤 전인가. 서울에서 만나 본 적이 있다. 대전 출신으로 일찍이 고등학교 때 '유방 큰 처녀의 라브쏭‘이란 시집을 내 주변을 놀라게 했으며 전국 백일장을 쓸다시피 한 ’전국구 문학소년‘이었다. 수원의 임병호 시인과 그때부터 교류를 시작, 몇 달 간 임 시인이 대전 윤 시인의 자취방에서 묵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윤 시인은 만18세, 대학교 1학년 때인 1965년 ’문학춘추‘로 등단했다.

나도 고등학교 때 시집을 냈고 수원과 전국 백일장에서 수상했으며 ‘학원’지에 작품을 내다가 ‘학원문학상’도 받는 등 나름 알려진 문학소년이었다. 1978년 군대시절 만21세 나이에 한국문인협회가 발행하는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했지만 윤채한 시인은 이보다 어린 만18세에 등단했다. 그 때는 시인수가 300~400명에 불과했고 내가 등단할 무렵인 1978년만 해도 700~800 명밖에 안됐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시인의 수가 많아진 것에 대한 비판도 있고 함량 미달 문제도 나오지만 시를 쓰겠다는 이들이 이렇게 많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김애자 시인이 한국시학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김애자 시인이 한국시학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준기 수원시인협회 회장)

본상을 받은 김애자 시인과의 인연은 꽤 깊고 길다. 1990년 무렵일 것이다. 내가 김애자 시인을 만난 때가. 김 시인이 현 수원문인협회의 전신인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부에 입회한 이후 친분을 쌓아갔다. 나이 차는 제법 난다. 나는 60대 중반이고 김시인은 70대 후반이다.

그러나 문학과 무예24기, (사)화성연구회 활동을 같이 하면서 나이와 성별을 초월하는 우정을 나누고 있다.

김애자 시인은 1989년 ‘시대문학’ 신인상에 수필이 당선돼 등단했다. 그리고 2001년엔 ‘예술세계’에 시가 당선돼 시인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17년엔 ‘시조시학’에 시조가 당선됐다.

어디 그 뿐인가. 서예에 천착, 공모전에 입상한 뒤 한국서가협회 경기도전 초대작가가 됐다.

나와 효원공원에서 무예24기 새벽수련도 함께 하기 시작했다. 본국검, 제독검 등 목검과 진검을 가지고 하는 검법 뿐 아니라 관우가 사용했다는 무거운 월도까지 휘두르는 열성을 보였다. 나중에는 궁술도 배워 수련생들과 몇 차례 몽골초원에 가서 말위에서 활을 쏘는 ‘마상기사(馬上騎射)’를 하기도 했다. 참, 난타도 배웠다고 했던가?

무궁할 것 같은 에너지를 가진 그도 나이를 먹어 가는가 보다. 지난 9월에 ‘환승할 역이 없다’(도서출판 고요아침 펴냄)라는 시조집을 출판했는데 빠르게 흘러간 세월이 느껴지는 시들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우편물 보내려고/주소록을 뒤적인다//뜻밖에도 누구였나/잊혀간 이름들//등 돌린 타계였거나/때 지난 인연이거나//마음 속 남지 못한/이름들을 지워간다//이리도 많았었나/짧게 끝날 연분들이//나는 또 어떤 이에게서/지워지고 있을까 -시조 '주소록' 전문

나의 길은 일방통행/환승할 역이 없다/뜻대로 살았으나/바꿀 수 없는 노정/내 삶이 이끄는 대로/묵묵히 나아갈 뿐 -시조 ‘환승’ 전문

세월이 흘러가면서 소원해지고 잊혀진, 또는 세상을 떠남으로써 지워진 ‘연분’들을 생각하며 나도 언젠가는 주소록에서 지워질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면 허전하기 마련이다.

그 길은 일방통행이어서 환승할 역조차 없다는 탄식을 한다. 시인은.

그럼에도 아직 김 시인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창작이다. 수원시인협회가 제정한 2021년 ‘수원시인상’ 수상소감에서 “갈증의 근본은 알 수 없었으나 그 목마름을 잊기 위해서는 늘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약에 쓸 힘도 없다시던 저물녘 엄마처럼/사는 일 힘에 겨워 진 빠지고 늘어질 때/무거운 헌 몸 받쳐줄 바지랑대 있었으면 -시조 ‘바지랑대’ 일부

목마름을 잊기 위한 행위, 헌 몸 받쳐 줄 바지랑대가 ‘문학’이 아니었던가. 또 문학이란 공간에는 얼마든지 변용(變容) 가능한 환승역이 마련돼 있다. 이름이 비슷한 술 친구의 말처럼 그대는 “젊어도 너~무 젊다”. 환승역은 무한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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