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자 본란에 ‘아! 방치된 창성사지, 3년 만에 폐허가 됐다’라는 제하의 칼럼을 썼다. 사단법인 화성연구회가 실시한 ‘수원의 역사, 수원의 문화재 모니터링’ 때 광교산 창성사지를 방문한 얘기다.

고려시대 사찰 창성사는 국가적으로도 위계가 높았던 사찰이었고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 유적이다.

고려 진각국사 천희의 입적사찰로써 자복사로 선정될 정도의 규모와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 문화재적 가치가 크기에 1986년 4월 8일 수원시의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5월 29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225호가 됐다. 이곳에 있던 비석은 1965년 매향동 방화수류정 옆으로 옮겨져 보물14호로 지정됐다.

창성사지의 금당(金堂) 등 건물은 모두 사라졌으나 축대와 건물기단, 석탑 일부, 주춧돌, 샘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 2013년 수원시는 창성사지 발굴조사 계획을 수립한 후 2014년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3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벌였다. 수원박물관과 한신대학교 박물관이 함께한 조사를 통해 창성사는 나말여초부터 조선 후기까지 약 700여년간 운영된 중요한 불교건축 유적임이 입증됐다. 또 보물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 탑비’의 원 위치를 파악하는 성과도 올렸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3년 전 발굴이 중단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의회의 반대 때문이다.

그 3년 동안 창성사지는 건물터와 축대 할 것 없이 무성한 잡초와 나무로 뒤덮여있었다.

칼럼을 통해 빠른 보존‧정비를 요청했고 수원시의회도 예산 확보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원박물관 최철희 학예팀장으로부터 ‘창성사지 잡목 제거했습니다’란 문자와 제거 후의 사진을 받았다. 응? 창성사지를 수원박물관에서 관리하나? 발굴 작업만 관여하고 관리는 시청 담당부서에서 하는 게 아니었나? 예산도 없고 힘도 없는 박물관이 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어 ‘창성사지 후속 조치를 위한 전문가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수원지역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창성사지 발굴사업을 재조명하며 후속조치를 재개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칼럼을 쓴 후 담당자가 문책이라도 당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었으나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주니 반갑고 고마웠다.

16일 열린 회의에는 나를 비롯해 시의원, 지도박물관‧백두문화재연구원‧시흥오이도박물관‧경기문화재단‧경기문화재연구원 소속 전문가들이 참석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창성사지 후속 조치를 위한 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사진=수원박물관)
‘창성사지 후속 조치를 위한 전문가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사진=수원박물관)

수원박물관 최철희 팀장의 설명이 끝난 뒤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매우 중요한 불교 유적지면서 자랑스런 수원의 문화유산인 창성사지에 대한 후속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4차 발굴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창성사지에 이르는 진입로를 정비하고 진입로 곳곳에 안내팻말이라도 만들자. 또 창성사지 안내판에 옛 모습과 발굴공사 장면, 발굴조사로 드러난 유구, 유물사진 등도 넣어 전시하자. 관리문제는 (사)화성연구회 같은 민간단체에 위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성 축성 때 돌을 캐낸 부석소들도 가시덩굴과 접목이 우거지고 관리가 안 돼 접근이 어렵다. 부석소 역시 약간의 예산만 들인다면 민간에게 관리를 맡길 수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후 발굴조사가 중단된 후 노출된 유구와 유적의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외부에서 온 전문가들은 “명색이 ‘특례시’인 수원시와 수원시의회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 밖에 안 되느냐. 망신이다”라고 말했다. 수원사람인 내 얼굴이 화끈 거렸다.

이날 중의(衆意)는 4차 발굴 작업을 하지 않을 거라면 박물관이 손을 떼고 시 본청 담당부서로 업무를 넘겨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설명한 것처럼 창성사는 국가적으로도 위계가 높았고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찰임에도 우리는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다.

아, 혹시 오해하지는 마시라.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다. 성당에 가서 경건하게 성호를 긋고, 절에 갔을 때 내키면 삼배 정도는 한다. 교회에 가서는 공손히 두 손 모을 줄 안다.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는 이슬람 성전에 들어가 한참 앉아있다 온 적도 있다. 종교에 대한 호불호는 없다. 친한 목사, 스님, 신부도 있다.

창성사지와 미학사지 등 수원 쪽 절터들과, 용인 쪽의 서봉사지 등을 연결하면 훌륭한 광교산 불교탐방로를 만들 수 있다.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던 화성시 당성인근부터 용주사, 수원시 봉녕사, 광교산 등을 이으면 산티아고순례길처럼 불교순례길도 가능하지 않을까?

고려 태조 왕건이 부처님의 가르침 같은 빛을 보았고 고려시대 89개의 절집이 있었다는 광교산은 충분히 불교성지가 될 수 있다. 창성사지가 재조명돼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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