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을 음력으로 섣달그믐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날은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아련한 추억의 속설도 갖고 있다.

때문에 소당(嘯堂) 김형수(金逈洙)는 섣달 그믐을 빗대  “나이 더한 늙은이는 술로써 위안 삼고 눈썹 셀까 어린아이 밤새도록 잠 못 자네”라고 읊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가는 세월 아쉬움에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는 뚯이라고나 할까.

과거 집안마다 웃어른을 찾아 뵙고 묵은 세배를 올렸고 친지들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았다는 섣달 그믐, 오늘이 그날이다. 

또 그믐을 수세(守歲)라 하여 가족이 모여 아침이 되도록 자지 않았는데 새해에 복을 받으려는 기원 성격이 짙었다.

한 해의 끝을 뜻있게 마무리하고 새해를 성스럽게 맞이하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교훈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근대부터 3년 전까지 매년 ‘제야의 종’을 울리는 것으로 가는 아쉬움과 새해에 거는 기대를 대신했다.

12월 31일 밤 12시를 기해 33번을 타종하는 ‘제야의 종’ 행사가 그것이다.

1953년부터 시작했고 그동안 서울 보신각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독특한 새해맞이 행사로 실시돼 왔다.

현장행사는 70년이 됐지만 사실 일제시대에도 제야의 종소리는 울렸다고 한다.

비록 방송으로 종소리를 내보낸 것이지만 1929년 1월 1일 0시 일이다. 

서울 정동에 위치한 경성방송국은 처음 이 종소리를 통해 새해를 알렸다.

당시 사용된 범종은 남산기슭 일본 사찰에서 빌려 스튜디오에 옮겨와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제야의 종 타종의 관행은 이렇게 시작됐고 해방이후 잠시 중단됐다가 한국전쟁 이후 다시 재개됐다.

타종 장소도 전쟁으로 파괴됐다 복원된 서울 종로 보신각으로 정해졌다.

보신각은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4대문을 열고 닫는 새벽 4시와 밤 10시 타종하던 곳으로 시공간(時空間)의 중심이다.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치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은 원래는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108번 울리는 것에서 유래됐다.

33이라는 숫자도 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 세상 도리천에 닿으려는 꿈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도리천은 복잡한 인간의 번뇌, 즉 희로애락이 없다는 곳이다. 따라서 타종의 의미도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제야 행사는 세계 공통이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 새해맞이 행사인 ‘타임스퀘어 공 내리기(Times Square ball drop)’가 있다.

공연도 펼쳐진다. 지난해엔 BTS가 초대돼 공연했다.

1907년부터 120년 가까이 매년 마지막날 밤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지름 3.5m 크기의 둥근 공이 특수 제작된 깃대에서 43m를 내려오면서 새해 시작을 알린다.

역시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릴 예정이다.

제야(除夜)는 ‘섣달 그믐날 밤’이라는 뜻으로 제야의 종은 ‘섣달 그믐날 밤에 울리는 종’이다.

오늘 자정, 3년만에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다.

세상에 퍼지는 그 종소리에 번뇌의  임인년 (壬寅年)을 실어 보내고 희망의 2023 계묘년(癸卯年)을 맞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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