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순 시집.
성명순 시집.

김준기 시인이 성명순 시집 작품 해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성 시인과는 면식이 없다. 몇 달 전 수원시인들의 시낭독회 자리에서 한번 얼굴을 스쳤을 뿐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그의 시들도 김준기 시인을 통해 전달받았다. 김 시인은 성명순 시인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굳이 신상이라든가 문학경력 등 개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시인에 대한 편견이나 이해관계는 전혀 없이 시만 보고 글을 썼다.

그리고 며칠 전 ‘시시하게 살자’(문학과 사람 펴냄)란 시집을 전달받았다. 가지고 다니기 쉽게 포켓판으로 만들었다. 저녁을 겸한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성 시인을 만났다. 첫 인상은 착하게 생긴 사람이란 것이었다. 시에서 받은 느낌과 같았다.

다음 내용은 시집 ‘시시하게 살자’에 쓴 내 해설 중 일부를 추린 것이다.

성명순 시집 ‘시시하게 살자’에 실린 시는 모두 81편이다. 이 시를 모두 읽는 데는 하루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대충 읽은 것은 아니니. 그리고 그 시들이 대충 읽고 지나갈만한 가벼운 내용이 아니니.

물론 ‘가을 길’처럼 아침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한가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듯이 읽을 수 있는 시들도 많다.

가로수 옆에 서면

누구라도

열 살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렇게 낮아진 당신은

방금 떨어진 선홍빛

엽서 한 장으로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앉은뱅이가 됩니다. / 「가을 길」 전문

가을 날 길을 가다가 가로수 아래에 주저앉아, 떨어진 선홍빛 낙엽을 주워들고 웃는 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문해력이 매우 빈곤한 사람을 제외하곤 이 풍경이 그려질 것이다. 쉽게 이해가 되는 시다. 생경한 문학 이론을 차용한 해설이 왜 필요한가.

쉽게 읽히는 시, 누구에게나 친근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호열 시인의 말처럼 ‘시가 함의하는 의미의 내포가 큰 시’여야 한다. 따라서 쉬운 시라고 해서 시인은 쉽게 쓰지 않는다. 시인이 한 평생 겪어낸 삶의 향기가 녹아 있다. 벼락치기 공부로 써지지 않는 것이 시다.

결코 시시하지 않은 사유, 다양한 시적 관심

성명순 시인의 시적 관심은 매우 다양한 것으로 보인다. 자질구레하게 생각되는 일상사부터 산천에 지천으로 퍼져있는 야생화며 곤충, 숙지산 부석소까지 시인의 눈은 분주하다. 그러나 ‘독자’ 입장인 나의 눈에 유독 많이 띄는 시들이 있다.

먼저 시인이 시집의 이름으로 삼은 ‘시시하게 살자’라는 작품을 보자.

시시하게 살자

문지방을 넘기조차

힘겨운 저녁이 있다.

그런 저녁이 오히려 참 시시하다.

옷장 앞에서 설레던 아침의 망설임도

거울에 번지던 립스틱의 종알거림도

여름날 저녁 은빛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쓰르라미의 울음만큼이나 시시하다

내 하루는 저 울음보다 빛이 났던가   / 「시시하게 살자」 전반부

내 하루가 쓰르라미의 울음보다 빛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저녁, ‘옷장 앞의 설렘’ ‘립스틱의 종알거림’ ‘셀로판지처럼 빛나던 시간’들은 시시해졌다. 그걸 알고 나니 시시하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소중해졌다는 얘기다.

성명순 시인은 사소한 일상도 시로 만든다. 그것은 평소에도 깊은 사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보이는 자연계의 사물과 그 변화 현상은 모두 신선한 시의 재료가 된다.

「계란프라이」에서는 ‘마침내 하얀 접시 위/네 송이 꽃으로 피어난 다비(茶毘)’를 보고, 「시계」에서는 ‘여기까지 잘 왔다고/오늘도 동트는 아침놀/삶의 숲 마주하며 태엽’을 감기도 한다. 「산의 문답법」에서는 ‘여름날 산을 감싸던 신록이 떠난 까닭을 묻’고는 ‘그냥 빙그레 웃으며/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만나기도 한다.

세상에는 시인이 많다. 각종 문예지와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발표되는 시들만 수천편일 것이고 그들이 쏟아내는 시집도 한 해에 수 백 권은 될 것이다.

시집을 처음 내는 사람도 있고 이미 수십 권을 냈다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그 수많은 시집들에서 꼽을 만한 좋은 시들이 얼마나 있느냐는 것이다.

시인들은 시집 한권에서 한편의 시만 건져도 성공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명순 시인의 이번 시집엔 삶이 응축된 보석 같은 작품들이 곳곳 숨어 있어서 찾아내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단, 보석을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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