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주를 한 잔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아니여, 난 감기 기운이 있어 못나가니 자네들끼리 재미있게 놀아”라며 통화를 종료하려 했다.

실제로 목이 간질간질한데 가래가 끼고 살짝 으슬으슬해지는 등 3~4 년에 한 번 정도 왔다가던 전형적인 감기 증세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약국에 가서 증세를 설명하고 약을 사다 먹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앓은 적이 있던 상대방은 대뜸 “그게 바로 코로나 증세예요. 꼭 검사 해 보세요”라고 당부했다.

전화를 끊고 곧바로 약국으로 가서 코로나19 자가 검사 키트를 구입했다. 약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집에 와서 시킨대로 해봤다. 이런, 곧바로 빨간 줄이 두 개 선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그냥 일반적인 감기나 몸살 초기 증세 정도였고 밥도 잘 넘어갔다. 게다가 감기라고 생각된 순간 작업실 겸 휴식처로 얻어 둔 원룸에 알아서 격리했으니 가족들에게 감염시킬 염려도 없다. 매주 한 번 씩 하는 가족 외식도 이번 주엔 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은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관대해져서 손가락질을 받지도 않는다. 예전엔 누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곁에 얼씬도 안했다. 환자는 죄인의 심정으로 격리된 채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요즘은 주변의 누가 감염됐다는 소리를 듣는 게 일상사가 됐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이른바 ‘위드코로나’시대가 됐다.

올해는 가라! 코로나. (사진=김우영 필자)
올해는 가라! 코로나. (사진=김우영 필자)

코로나19 증상은 발열, 권태감, 기침, 호흡곤란 및 폐렴 등 경증에서 중증까지 다양한 호흡기감염증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 밖에 가래, 인후통, 두통, 객혈과 오심, 설사 증상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나에게 온 증상은 그냥 약한 고뿔 걸린 정도였다. 아, 다시 말하자면 코로나19백신을 처음 접종했을 때 이보다 약하지만 비슷한 느낌이 있었긴 하다. 나른하고 입맛이 조금 없어진 느낌.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대부분 사람들이 심한 인후통과 오한, 호흡곤란 등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있다.

약을 먹으면서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무슨 근거로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고 자신했을까. 줄줄이 감염됐던 내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면서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바이러스라는 놈은 국적과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말을 함부로 해서 나를 자주 웃겼던 미국 전 대통령과 영국총리, 멕시코대통령, 일본총리, 네팔 대통령 등 국가수반들도 줄줄이 코로나에 걸린 바 있다.

창궐 초창기 ‘우한폐렴’으로 불리던 시절, 잘나가는 은행 임원이었던 후배가 이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그 소식은 한참이나 지난 뒤에 내 귀에 들렸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코로나19는 걸리면 죽거나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해야 하는 끔찍한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감염자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 후배는 내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술·담배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도 변을 당했다.

술·담배를 모두 즐기는 나로서는 움츠러들만한 사건이었지만 아직도 과감히 끊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온 뒤 잠시 술·담배를 멀리하고 있지만 영영 끊겠다는 결심은 아직도 하지 않고 있다.

벌써 소문이 퍼졌는지 방금 전 문자가 왔다.

“천하의 김우영도 코로나19를 비켜가지 못하는구나 ㅋㅋ”

“격리 중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만 하시라요. 즉각 배달해 드리갔습네다 ㅎㅎㅎ”

이상하다. 분명 나를 놀리는 것 같은데 불쾌하지는 않다. 사실 그동안 주변사람들 대부분 걸렸는데 나만 면역력이 강한 척하는 것도 미안했다. 심지어는 두 번째 걸린 이들도 있는데.

그 사이 ㅊ박사는 귤과 칡즙 한 상자씩과, 면역력에 좋다는 흑마늘즙을 두 상자나 보내왔다. 아내도 영동시장 2층 젊은이가 만들어 파는 돈가스와, 매생이 굴국 재료를 방문 밖에다 놓고 갔다. 걱정해주는 전화와 문자도 많이 받았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래 잠시지만 같이 놀자. 코로나야.

신년 하례주를 나누고 싶은 벗들은 조금만 참아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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