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인들의 모임이 끝난 뒤 술꾼들만 따로 모였다. 우리들의 ‘참새방앗간’인 행궁동 맥주집 다담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 오현규 씨가 수원예총 회장(한국예총 수원지회장)으로 선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월 14일 선거를 했다는데 나흘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예총회원이 아니다. 현재의 수원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 수원지회) 재창립 멤버로서 수원예총 창립총회에도 참석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편을 가르는 선거에 불편함을 느꼈다. 만나면 좋았던 선후배 사이는 아군과 상대편으로 분류됐다. 한 때는 나도 어느 쪽 무리에 속해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행위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뒤늦은 부끄러움이 찾아왔고 문협에 나가지 않았다.

수원문협에서는 얼굴도 비추지 않고 회비도 안내는 나를 제명했다. 제명을 당했지만 후련했다. 나와 가까운 이들이 회장이 된 후 재입회하라고 권유했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선거가 없어지고 ‘추대’가 정착된다면 생각해 보겠노라고만 대답했다.

자연스레 수원예총과도 거리를 두게 됐지만 그곳엔 아직도 나의 정다운 벗들과 선·후배, 선생님들이 모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남의 동네’는 아니지만 관심은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선거결과를 듣고 곧바로 전화를 했다.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한지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가 정년퇴직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같은 수원에 살고 있고 수원북중학교 선배지만 그동안 소원했다.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크게 반가워했다. 수일 내로 저녁식사자리를 만들자고 한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 시절에 오 회장과 자주 만났다. 그의 기고문을 실어주기도 했고 그가 지휘하는 합창단 공연예고 기사와 공연리뷰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음악의 도시, 합창의 도시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일생은 오직 음악만을 향했다. 음대를 졸업한 뒤 음악교사로 후진양성에 힘쓰면서 지역음악 활성화를 위해 헌신했다. 경기예총, 경기도문화의전당, 수원 화성 문화제 등 각종 문화단체의 운영위원과 합창단의 지휘 및 총감독을 맡아 합창 수준을 몇 단계 상승시켰다. 수원 화홍중과 정천중, 수원 공고의 교가를 작곡, 개사하기도 했다.

 오현규 회장(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오현규 회장(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특히 합창단 육성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난파합창단, 수원콘서트콰이어(옛 난파콰이어), 선경 선영회합창단, 대한어머니합창단, 롯데엔젤스, 늘푸른교사합창단, 경기도 아버지합창단, 수원 새마을부녀합창단, 삼성불루보이스, 삼성 필홈스, 삼성탕정합창단, 수원시니어합창단 등 20여개의 합창단의 창단 주역으로, 상임지휘자로 인연을 맺었다. 이 가운데 그가 지휘한 콘서트콰이어는 제3회 전국합창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수원 시니어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수원시니어합창단의 공연은 한국경기시인협회가 매년 봄에 개최하는 만석공원 시낭송회에서 본 적이 있다. 2011년 그의 주도로 창단, 정기공연은 물론 국내외 초청공연을 해오는 등 문화예술 사절단의 역할도 해오고 있다. 오랫동안 난파기념사업회 회장과 난파음악제의 운영위원장도 맡았다.

오현규 회장의 호는 ‘마예(摩藝)’다. 산책 중 수원공고 운동장 옆의 정년 기념식수 석판을 보고 알게 됐다. ‘두드릴 마’에 ‘예술’자이니 예술을 갈고 닦는다는 의미겠다. 지휘자를 뜻하는 ‘마에스트로(maestro)’로 받아들여도 된다.

그는 인생 좌우명을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서 쓰러지는 그날까지’라고 밝힌 바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팔달산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트럼펫 소리에 빠지면서 음악인생이 시작됐다”는 오현규 회장. 그의 몇 안 되는 외도 중 하나는 2012년 문예비전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수필가로 등단한 것이다. 전기한 것처럼 나는 신문사 문화부 기자 시절 그의 기고 글을 자주 접한 바 있으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난 2009년엔 ‘마예 오현규’라는 책도 낸 바 있다.

오 회장은 2014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휘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융합시키는 수행자적인 봉사와 목표를 가지고 지도자 길을 가는 목적이 설정돼야 오랜 기간 합창의 성역을 창출할 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수원예총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융합’시킬 수 있을까. ‘마에스트로 오현규’가 이끄는 수원예총이 어떤 화음을 낼 것인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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