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다섯 고교동기들과 남양주 화도읍의 천마산(天摩山)에 갔다. 호가 야천(野泉)인 인솔자 친구가 미리 알려주었다. 산 정상 아래에 가파른 경사의 언덕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천상(天上)의 화원(花園)’이라고.  

 812m 등정 길 중턱에서 우리는 휴식하며 간식과 막걸리를 먹었다. 취기도 경사가 가팔랐던가. 건축사업가 및 탐화가, 노조운동가 겸 임원, 해외이민사업가, 교사 겸 사진작가, 장군 및 교수 경력을 지나온 친구들의 주름살 너머로 고교 시절 까까머리 앳된 얼굴을 보았다. ‘바람 부는 마뜰 벌판에서 첩첩 산 분분 강을 넘고 건너 이 천마산까지 오기는 했네’. 옅고 설핏한 알 수 없는 슬픔과 기쁨에선지, 성급한 안도와 못내 떨치는 불안에선지, 그것들이 다 섞인 감회에선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친구들은 범박한 표정에 반응도 없었지만 내심 소회가 없지 않았으리. 

 우리는 ‘천상의 화원’에서 여러 야생화와 만났다. 점현호색, 노루귀, 앉은노란부처꽃, 는쟁이냉이(일명 산갓), 생강나무, 산괘불주머니, 제비꽃 등등. 노란 복수초가 군생하고 있는 구역으로는 기다시피 올라가 인사하였고, 가슴으로도 사진을 찍다가, ‘너도바람꽃’과 ‘미치광이풀’과 조우하였다. 둘은 작은 돌을 배경으로 옆으로 나란히 서있었다. 첫 대면하는 내게는 그 형태와 이름에 호기심이 더 일어 더 자세히 보았다. 생후 백일 지난 아기가 그림책에 이끌려 그러하듯이. 너도바람꽃은 ‘나도 바람꽃이고 너도 바람꽃’이라는 취지에서 지은 이름이 아닐까 추정하며, 명명(命名)에 함축된 대동의 유대의식에 공감하였다. 존중과 배려, 소통과 친애의 미덕, 평등과 공존, 양립과 호혜의 정서에 ‘기경(起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의식의 배경에는 인간과 인생을 나그네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바람은 나그네의 영혼이요, 나그네는 바람의 육신이 아니겠는가. 미치광이풀, 과문이지만 이 이름은 야생화에 어울리지 않고 그 전후에 유례도 없을 것이라 여기며 왜 하필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일까 궁금하였다. 사춘기 딸을 동반한 중년의 한 나그네가, 소가 뜯어먹고 정신이상이 발병하여 그런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돌아서다가 되돌아서서 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꽃도 핀다니까요, 아주 쬐그만하지만요”  

 둘은 연인같이, 아니 정작 연인으로 서 있었다. 다정한 그 자태에 숨죽이다 이윽고 나는 연상하였다. 미치광이풀은 사랑을 이루지 못해 미치고 말았던 이의 환생, 너도바람꽃은 연인이 미쳐 결국 불행했던 이의 환생... 그래서 미치광이꽃은 저렇게 고개 숙이고 있고 그렇게 있지만, 이젠 사랑의 안정에 행복하여서 좀 수줍기조차도 한 진정(鎭靜)의 태도이고. 그리고 이들의 전생에는 한 조력자가 있었다, 우울과 모멸의 나락에 빠진 미치지 못한 이에게 그런 너야말로 너도바람꽃이라고 위무(慰撫)한 바람의 도인(道人). 

 겨우 능선으로 돌아 나와 천마산 정상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때로는 엎드려 네 발로 기었다. 창피하기는커녕.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저리는 오금을 누르며 산상을 쳐다보았고, 간신히 아스라한 산하를 내다보았다. 문득 지난 세월의 장면들과 곡절들이 수상(殊常)하게 상기되고 어이없고 아쉬웠다. 그것들은 ‘나’를 벗어나 있었던 몽상 같았다. 아 또 일시의 감상(感傷)이었나. 그 여운이 이어지는 오늘, 졸시 한 편을 썼다. 「너도바람꽃과 미치광이풀」  

 천마산 천상의 화원, 별세계의 세속. 그 한 구석에서 복수초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빠르거나 늦게 꽃피우고 있는데, 아 너도바람꽃, 너도 고개 들고 있구나. 그 옆 그 옆에는, 고개 숙이고 있네 미치광이풀.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이여, 우리 여섯 나그네는 전생에 미치광이풀 따서 꼭꼭 씹었던 소였었나, 터지려는 가슴과 뿔 꽃피우듯 터트리려, 아지랑이 바라보며 철쇄 우리에서 미쳐 날뛰었던 소였었나. 그러다 그러다가 천마(天摩), 그 세상 천마의 절벽에 너처럼 아로새겨진 폭포를 스쳐갔던 바람이었나 

 이 세상의 풍진을 거쳐 이제 좀 지쳤기도 하고 너그로워졌기도 하고, 그래서 눈이 좀 밝아진 옛 까까머리 친구들. “뭐 죽음은 그저 자연의 하나일 뿐이지 않나”, “지난 2월에 제자들에게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고, 남에게 해코지 하지 마라’는 고별사를 남겼지”, “근년 들어 자주 자아를 내세우는 마누라에게 화내지 않고 기대를 교환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내지”, “걷는 모양은 신통찮지만 얼굴은 그대로군 그래”, “산 오르고 꽃 보기가 어렵지만 다정히 이야기하며 걷고 걸으면 누구나 가능하지”라며, 각성을 촉진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친구들, 그들은 이미 ‘너도바람꽃’이기도 하였다.  

 PS : 친구들에게 : 시공이 우리 인간에게 질곡과 같은 제약이기도 하지만 초탈을 지향케 하는 실존의 운명 아닐까. 나는 한참 망설이다가 천마의 뜻, ‘하늘을 갈다, 문지르다, 비비다, 연마하다, 쓰다듬다, 어루만지다’ 중 ‘하늘을 비비다’를 선택하였다네. 무엇을 어떻게 비빈다는 것인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감히 말하기가 어렵고 멋쩍기도 해 함구하련다. 하나 더. ‘미치광이풀’도 아주 작은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미치광이풀꽃’이나 ‘미치광이꽃’이라 부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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