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왔다. 보낸 이는 안양의 장호수 씨다.

“오늘은 고 김대규시인 5주기입니다. 잠시 시인을 추모해주세요-김대규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그렇구나, 어느 사이에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또 흘러갔구나.

지난해 12월 28일 안양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열린 김대규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 조명 심포지엄 포스터에 들어있는 김대규시인.
지난해 12월 28일 안양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열린 김대규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 조명 심포지엄 포스터에 들어있는 김대규시인.

 

열심히 마셨고, 열심히 피웠다.

열심히 읽었고, 열심히 썼다.

열심히 사랑했고, 열심히 방황했다.

열심히 홀로였고, 열심히 외로웠다.

열심히 아팠고, 열심히 거듭났다.

열심히 살았고, 열심히 죽는다.

-김대규 시 ‘간추린 자서전’

시인이 영면이 들기 얼마 전 쓴 시다. 그렇게 그는 ‘열심히’ 죽었다.

김대규 시인(1942~2018)과의 인연은 50년에 가깝다. 1975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니까, 정확히는 48년 전이다.

내가 편집위원인 ‘한국시학’ 2018년 봄호 대담에는 나와 김대규 시인의 만남이 수록돼 있다.

임애월 : 고등학생 때(1975년) 첫 시집을 묶었다면서요?

=김우영 : 『당신이 외치는 문』이란 책인데 지금은 내게도 한권 남아 있지 않답니다...(중략)...암튼 그 책을 안양에 계신 김대규 시인께도 보내드렸는데 재학 중이었던 수성고등학교로 전화를 하셨어요. 그분은 당시에 덕성여대인가 연세대인가 거기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수업시간에 한번 와서 학생들에게 얘기를 해주라는 거였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남 앞에 나서는 거 싫어서 고사했더니 안양으로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시조시인 유선)의 허락을 받고 시인 임병호 형님과 함께 안양에 갔더니 허름했지만 안양의 문화예술인들의 명소였던, 지금으로 말하자면 실내포장마차에 안양 문화예술인들이 한 30명 쯤 앉아있었네요. 그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거랍니다.

이후 안양 주택가 철길 옆에 있었던 길모퉁이 카페에서, 안양천 옆의 실내 포장마차에서, 안양 중심가에 있던 통술집에서, 때로는 수원의 술집에서 김대규 시인과 임병호 시인, 안진호 시인 등 ‘시와 시론’ 동인들과 자주 만났다.

나중엔 나도 ‘시와 시론’ 동인이 됐지만 사정상 동인지는 더 이상 발간되지 못했다.

김대규 시인은 내 시집 ‘겨울 수영리에서’의 작품해설도 썼다.

‘김우영 시인은 비, 눈물, 술, 강, 바다, 안개 등 물과 깊게 관련되는 수성분(水性分)의 동인(動因)을 거느리고 있다’ 그것들은 ‘직접적인 수성의 소재에서 착안된 것이지만, 그러한 즉물적인 제재들이 가난이나 현실적인 비애감으로 전이되면서 다시 (물)의 원형적 상징질료인 여성성과 사랑, 성과 죽음의 본류로 자연스럽게 유입되고 있음에 유의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천부적인 조숙함(인간적·예술적) 때문에 시인으로서의 앞날이 불안하다‘는 염려도 했다. 그의 말은 맞았다. 어느 순간 시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시를 쓰는 것 보다는 칼럼이나 사설, 르포 같은 글을 쓰는 일이 더 즐거웠다. 뭐 그렇다고 시를 놓아버린 것은 아니다. ’전(前) 시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일 년에 열편 정도는 쓴다.

김대규 시인은 한 번도 안양을 떠난 적이 없는 안양사람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 중의 한사람으로 고등학교 재학 중인 1960년 시집 ‘영의 유형(靈의 流刑)’을 펴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김대규 시인이 펴낸 책 일부. (사진=김우영 필자)
김대규 시인이 펴낸 책 일부. (사진=김우영 필자)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동인지 ‘시와 시론’을 이끌면서 등단제도와 한국문단의 병폐에 맞섰다. 특히 1989년 발표한 명상록 ‘사랑의 팡세’와 스승 조병화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시인의 편지’는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안양에서는 김대규문학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2021년 경기도 지방재정 투자심사위를 통과했고, 2024년 2월 착공, 2025년 8월 준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대규문학관은 삼덕도서관 옆 부지(안양동 782-40 외 1필지)에 연면적 740㎡(대지면적 291.4㎡)의 지하1층~지상5층 규모로 지어진다. 시인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실을 비롯해 연구‧교육실, 세미나실, 수장고, 북까페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창작문화 공간 등이 마련된다.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지역주민들의 문학 체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주민 친화형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뭐든지 쉬운 일은 없나보다. 그는 안양을 대표하는 문학과 예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근 문학관 명칭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개인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을 지금 꼭 건립해야 하느냐며 “시민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 시민을 위한 문학관이나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라”고 주장했다.

김대규 시인과 오랫동안 교유해온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안양지역의 집단지성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여기 저기 뒤져 그의 책 몇 권을 책상 손 가까운 곳에 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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