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 동안 280조 쏟아부은 출산정책 비참·초라할 뿐 

- 합계 출산율 0.78명, OECD 회원국 중 최저

-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젠더갈등’까지 더해져

- 정부 또다시 대책 발표했으나 재탕 삼탕 지적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한 배경엔 얽히고 설킨 실타래처럼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한국의 저조한 출산율이 ‘젠더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외신이 전해져 공감을 샀다. 

미국 언론인 안나 루이즈 서스만은 시사 주간지에 기고한 ‘한국인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칼럼에서 “한국에서는 인종이나 나이, 이민상태보다는 성별이 가장 날카로운 사회적 단층"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러면서 출산율 급락 현상이 주거비와 양육비용, 육아 문제 등으로 비롯된 것은 맞지만, 여성과 남성 사이 악화되는 관계도 간과해선 안된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젠더전쟁’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자 여러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맞는다는 여론이 많았다. 개중에는 ”여성과 남성 사이 불신과 증오가 있다는 것이 한국의 출산율 감소세를 이해하는 열쇠"라는 반응도 있었다. “왜 여자가 주인공이 돼야 하느냐며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자는 요즘이니 그럴만도 하다”는 긍정론도 나왔다고 한다.

오르지 않는 출산율의 원인을 짚다보니 별별 분석이 다 나온다 싶다. 결혼정보업체 설문조사에는 이런 저출산 이유도 있다. 남성들은 ‘장래 배우자의 페미니즘적 성향’이나 ‘독박 경제 활동’을 우려해, 여성들은 ‘비대칭적 가사 분담’을 걱정해 결혼을 꺼린다고 한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라는 논리다. 10여년 전부터 20~30대 여성들 사이에 ‘비연애·비성관계·비혼·비출산’을 뜻하는 이른바 ‘4B 운동’이 만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니 변한 세상을 실감한다.

이러는 사이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최저가 됐다.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숫자가 1명도 안 된다는 얘기다. OECD 38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미만인 국가로 기록중이다. 1991년만 해도 합계 출산율은 1.71명이었다. 한 해 태어나는 아이만 71만명이나 됐다. 그러던 것이 30년 만에 반토막이 난 것이다. 

지난 16년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종합계획을 만들고 2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비참하리만치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대로 가면 나라와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출산 문제는 앞서 언급한 젠더 갈등이외에 여러 문화적 요소가 얽혀 있어 정책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어 난감이다. 베이비붐 시대를 넘어선 90년대부터 300조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지만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나라 장래를 걱정해야할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렇더라도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을 통해 문화, 경향, 풍조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이런 의미에서 엊그제 정부가 발표한 저출산 대책은 일정부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과거 정책을 약간 수정 보완한 재탕 삼탕 성격이 짙다는 지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기존 출산율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근본 원인을 철저히 점검한 뒤 정책 전반의 재설계를 통해 과감하고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간 해결될 일이 아니지만 다시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부터라도 서울·지방의 불균형 발전, 양극화 심화, 계층 사다리 실종 등 거시적 요인들까지 포괄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점점 '살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젊은이들의 항변이 늘고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재앙적 결과는 예상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우리보다 일찍 우여곡절을 겪은 프랑스는 현재 합계출산율이 1.8명이다. 가족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서 출산율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가족지원금이 OECD 회원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을 정도의 투자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가족에 대해 지출하는 금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우리의 1.3%보다 3배나 많다. 저출산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 만큼 시급한 이 때, 중요한 것은 정책의 효율성이다. 효과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한 돈도 써야 한다. 국가 미래를 위한 일이며 좌고우면(左顧右眄) 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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