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괴팍하지만 세련된 심미 취향으로 그 추종을 사양하기 어려운 존중하는 소설가 후배가 며칠 전 카톡으로 한 노래파일을 보내왔다. 「워싱턴 광장」. 초등학생 시절에 들었던 이 시스터즈의 가사 첫 부분이,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먼 산에서 달려오는 메아리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현재 시공에서 고막을 잔잔히 두들기듯이. 감명 깊었던 노래는 무의식 비슷하게 저장되었다가 세월이 오래 지나도 어떤 계기가 있어 접촉되면 쉽게 재생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레트로 코버 전문 밴드 ‘오드리양장점(송주영 최수빈)’이 리메이크 한 그 파일을 틀었다. 가사의 첫 두 문장이 “워싱턴 광장 한 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만나보고 싶네”가 아니라, “저 넓은 광장 한 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이네”였다. 이 시스터즈의 1964년 원곡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다. 좀 낯설기도 하였다. 두 노래는 가수들의 캐릭터와 가사 해석에 따라 연출된 어조로 서로 달랐고, 유려하고 감미로운 애조(哀調)의 기본 정조(情調)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시스터즈의 「워싱턴 광장」도 60년대에 유행했던 서구 팝송의 한국 리메이크 중 하나. 1963년에 밥 골드스타인(Bob Goldsteinn)이 작곡해 밴드 ‘빌레지 스톰퍼스(The Village Stompers)’가 경음악곡으로 연주하였고, 제임스 라스트(James Last)가 가사를 써 노래로 불렸다고 안다. 이 시스터즈의 「워싱턴 광장」은 박선길 편곡, 김문응 작사. 김문응 작사가 아니라 번역이나 번안이 아닐까 하였는데, 그렇지 않았다.

 저 넓은 광장 한 구석에 쓸쓸히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이 가슴 설레이네 

 벤죠 줄을 울리면서 생각에 젖어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보고 싶네 

 저 넓은 광장 한 구석에 외로이 서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난 알고 싶어지네 

 먼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 있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보고 싶네

 메마른 낙엽 흩어지는 저 워싱톤 광장 오고가는 사람 없어 외롭기 한이 없네  

 돌아갈 생각 하지 않고 벤죠만 울리는 그 사람은 누구일까 꼭 만나보고 싶네 꼭 만나보고 싶네 꼭 만나보고 싶네 

 이 가사는, 제임스 라스트의, 포크 음악을 애호하는 화자가 ‘미국 각처에서 만난 비범한 떠돌이 포크 뮤지션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워싱턴 광장〉에 모여 이 세상에 자유의 노래를 전파하자’고 권유하는 가사와 많이 다르다. 김문응 번안이라 한 기록도 있는데, 번안이라 하기도 어렵다. 

 가사도 시이다. 시가 노래를 전제로 지어지거나 노래의 말로 활용되면 ‘가사(歌詞)’라고 했다. 동양 최초의 시집 『시경』의 시들도 그 자체 시이면서, 특정 멜로디와 결합되었던 가사이기도 하였다. 또 누구나 알듯 우리 현대시를 가사로 삼은 노래도 많다. 어떤 시에 감동하여 그 시에서 어울리는 멜로디가 부연되고 가창되면 노래로 성립된다. 어떤 감흥이나 악기 연주에서 멜로디가 발생하고 그 심취에서 나아가 어울리는 사연이 후속되고 가창되면 또한 노래로 성립된다. 김문응이 지은 「워싱턴 광장」의 가사는 그러니까 후자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자세한 관련 사정을 모르는 추정, 가요사 연구가의 검토가 있기 바란다.) 

 일인칭 관찰자 화자는, 가을 날 워싱턴 광장의 구석에서 누가 보든 말든 밴죠를 연주하는 뮤지션을 주목한다. 주목은 주목에 그치지 않고 호기심으로 바뀌고, 호기심은 홀로 쓸쓸한 ‘그 사람’에게서 가슴 설레는 애정으로 바뀐다. 그의 고독한 분위기를 화자는 동정할 뿐만 아니라 밴조 연주에 감명이 있고, 또 깊이 사색하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다. 누구일까. 교감하고 싶다. 그런데 감상성(感傷性) 작중 무드를 승화시키는 고조에서 키 역할을 하는 낱말을 우리는 만나고야 만다. 2절 2행의 ‘먼 하늘’. 

 단순해 보이기도 하는 화자의 그 앞뒤 경사(傾斜)를 독자들이 용인할 수 있게 하며, 그의 밴죠 리듬이 무엇을 뜻하는지 독자와 청자도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시선과 모습을 미지의 밴죠 리듬과 더불어 독자와 청자에게 무한하고 영원한 그 무엇을 연상하게 하는 상징으로 다가오게 한다. 

 워싱톤 광장도 이제 저 광대무변한 하늘로 연결되는 성스러운 ‘소도(蘇塗)’로 변화한다. 뉴욕 맨하튼의 ‘워싱턴 광장’은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과 미국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념하려고 그의 취임 100주년이었던 1889년에 조성한 공간. 음유시인의 후예이자 보헤미안일 ‘돌아갈 생각 하지 않고 벤죠만 울리는 그 사람’의 ‘먼 하늘’ 사색은, 미국 독립선언서의 첫 부분에 제시된, “생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는 천부의 권리”가 아직 실현되지 못 했다며 되새기는 성찰이거나, 그 유사한 어떤 위대한 생각일 수 있다. 더불어 이 노래 가사의 매력은, 그와 그 사색이 알 수 없는 아련한 미지의 영역이며,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이루어지기 어려운 그 무엇이라는 청진(淸眞)한 ‘애수(哀愁)’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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