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시 '향수'는 1980-90년대 필자가 인사동을 들락거리던 시절에 작고 화가 강용대가 인사동 술집에 앉아 암송하며 들려주던 단골 시였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 옛 시골의 풍경을 듣던 재미가 솔솔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최근 나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손자인 화가 정택영 화가의 추상화에 매료되었다.

최근의 그의 그림은 단순 명료해서 좋다. 그림이란 구태의연한 설명이 필요없다. 

우리의 신경세포란 마치 반도체의 미세한 회로처럼 우리 마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몇 초도 안되어 마음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마음에 끌리는 그림은 순간이다. 

그런데 인사동을 들락거리던 필자의 젊은 시절은 화가 강용대의 구성진 정지용의 시 '향수' 암송은 참으로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필자로서는 이 시가 내게  한국적 향수를 심어준 것은 6.25 한국전쟁 이후 필자가 살았던 어린시절 60년대의 전형적인 한국 시골 농촌을 풍미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강용대의 절창 정지용의 향수는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이 시는 명백히 한국인의 순백을 논하는 위대한 시임에 틀림없다.

정택영 화가는 그의 단상에서 말한다.

빛이 있는 한 언제나 생명은 있다. 외부의 빛은 태양으로부터 온다.

 

'태양을 보고 살아가면 당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할 것이며,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당신의 실체를 보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만져지지 않고 다만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곧 사랑이다. 사랑은 밝고 따뜻할 때 나온다.

사랑은 곧 빛이며 빛은 곧 생명이다.

내가 빛을 그리는 까닭이다.'

 

다시, 정택영 화가가 이야기하는 가슴으로 느끼는 빛줄기 사랑은 한국인의 뼈저린 정서-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에 있다.

화가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을 화폭으로 옮겨 그린다면 어떠할까?

그가 주장하는 빛을 생명으로 보는 것은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그리워진 까닭이 아닐까 한다.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당신은 아마도 우리들의 어릴 적 향수가 묻어 나오는 빛의 생명이라는 커다란 화두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종근씨는 최근 투데이신문과 매일경제 신문에서 각각 "인상주의 화가들을 빛의 화가들이라 부른다. 빛이 순간적으로 세상에 닿는 찰나에 집중해서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다. 이제 정택영 작가는 진정으로 회화에서 색채와 빛을 노래한다. 나는 그의 빛의 이미지가 결합된 색면 추상에 주목한다. 나는 이것이 형태와 조형, 색채의 절제를 통하여 현대 회화로 생명의 근원을 지닌 형식으로 존재하는 일임을 신뢰하기 때문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정택영화가는 작업 노트에서

'예술은 눈의 즐거움이 아니라 가슴의 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 예술의 본질에 대한 나의 신념이다.

눈의 즐거움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가능할 수 있지만 예술을 통해 가슴의 울림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큼 예술은 시각적 유희에 그쳐서는 안되며 가슴으로 전달되어 감성을 자극하고 그 자극으로 인한 자각으로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 예술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세미한 현상과 존재방식을 발견하고 이를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유를 통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본다. 눈은 사물의 외형을 보지만 사유는 사물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조형예술을 하는 궁극은 언어가 아닌 나의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 작품 세계는 나의 고유한 언어이자 내 삶의 철학을 쏟아낸 "사고의 집"이다. 그 사고의 집 속에는 내가 살아오면서 겪어온 무수한 경험들과 깨달은 진리의 편린들이 서로 연결되어 뭉쳐있다. 그것은 남으로부터 배우거나 얻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삶에서 부딪히면서 얻은 소중한 체험들에서 터득한 값진 진리들이었고, 모든 체험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의 결과에서 체득한 것들로 자연의 이치와 순환원리를 깨달아가는 삶의 도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럼으로써 사물들이 각각 고유의 색과 극도로 단순화된 형상과 코드를 갖고 표현되며 그러한 요소들이 한 화면의 공간 위에서 서로 어우러지면서 회화로서의 생명력을 획득한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물은 빛의 언어에 의해 존재가 명명되며 그것이 상징적인 색채와 형상의 요소들로 화면에 표현되었을 때 다시 회화의 언어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며 빛의 언어가 방출하는 에너지에 의해 다시 화면 위에 살아나는 것이다.'

정택영 '봄바람'
정택영 '봄바람'

빛의 언어 ( digital drawing) 첫번째 그림 '봄바람'은 빛이 사물에 닿았을때 시각적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색이 아닌 , 작가가 봄의 여인의 이미지를 재해석해서 기본 드로잉 위에 다시 디지털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 4절과 최근 화가의 디지털 그림  봄바람과 숨결이 이어진다.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정택영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정택영 '자연과 인간의 조화'

두번째 그림은  사람 인(人)자와 봄볓을 받으며 생장하는 조용하나 힘차게 밀고 올라오는 풀섶의 이미지들을  한국적인 오방색과 서양적 기법으로 해석해 디지털 드로잉한 작품이다. 

정택영 '물의 언어'
정택영 '물의 언어'

빛의 언어 연작중 세번째 그림 '물의 언어'는 물의 일렁임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겸손함과 오수를 정화시키는 물의 힘, 끊임 없이 흘러야만 생수가 될 수 있는 물의 속성을 포착하고 물가에 서식하는 생물들과 야생초들의 생명력을 '빛의 언어'로 재해석 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한 디지털드로잉이다.

노자가 제시한 이데아- 상선약수(上善若水)로 제시된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을 그렸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는 물흐르듯 하는 게 순리이다.

수년간의 코로나 증상의 분열증으로 시달린 세상에 던지는  해맑은 그림이다. 

문화예술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의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  

 아트 포 피스(ART for PEACE)!

 

*정택영 작가 소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외국어 학당에서 영어과를 수학,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파리에 거주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과 동시에 재불예술인 총연합회의 회장직을 맡아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각 장르의 작가들을 융합하고 장르간 협업과 상호 통섭을 통한 현대 미술가들의 활동영역 확장에 기여, 헌신하고 프랑스 작가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하고 있으며 프랑스에 유학중인 젊은 청년들과의 정신적이며 예술적인 교류를 통해 차세대의 정신적 비전을 심어 주는 역할과 작가 활동을 하고 있다.

화가 정택영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1536-93)선생의 직계 후손으로 태어났다. 또한 '향수'를 지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옥천에서 그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