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승 화백과 필자의 인연은 인사동에서의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종승 화가와 함께 한 첫 그룹 전시로는 1995년 '하늘소리 그 텃-밭'이라는 5인의 초대전이 인사동의 동광갤러리에서 있었다.

당시 참여 작가로는 강용대(작고), 이수(작고), 이종승, 강정남(강탄공 스님), 김용문이었는데, 그 이후로 2020년 인사동 5인전(이종승, 강탄공, 금보성, 인명, 김용문)이 인사동에서 30년 만에 블랙홀 재회전을 가졌다.

그들의 만남이 띄엄띄엄 만나는 존재감 없는 무수리로 보이는 혼돈일 지 모른다.  

우주 그림의 대가, 별아이 강용대는 떠난 지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니다.

쌀 몇 알갱이로 곱씹으며 세상의 말을 다스렸던 화가 강용대가 생각난다. 만남과 이별이 우주에서 일상이지만, 카오스가 무럭무럭 자라던 젊은 시절의 TV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무한한 우주로 떠나는 환상열차가 여전히 필자의 머리에 남아 있다. 청춘의 열망과도 같은 사랑도 애틋하지만 먼 미래에 대한 미지의 세상-카오스가 화면으로 오버랩된다.

2023년 현재에도 여전히 인사동을 출몰하는 이종승 화가는 인사동의 멋진 노화백- 중절모자신사, 인사동 대통령으로 통한다.

그는 매주 수요일 오픈 하는 인사동에 어김없이 나타나 화가들의 전시를 축하해준다. 만남의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한 화가이다. 

인사동이 '문화예술이란 블랙홀' 속에서 우린 우리나라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여러 번의 흔적을 거치는 이종승의 그림은 블랙홀의 언저리에 있다. 스멀스멀 우리의 상상력을 고조시킨다.

이종승 그림 카오스.
이종승 그림 카오스.
이종승 그림 카오스(2).
이종승 그림 카오스(2).

2002년 정우일 시인은 '이종승의 만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생명 근원의 표상인 존재의 세계를 찾아 나선 순례자로 칭했다.

"이종승의 만다라는 시작과 끝을 하나로 묶어 쉴 새 없이 이웃과 경계를 없애고자 한다. 그것은 홀로그램 속 우리들 삶의 다변화된 현상들을 표출한다.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무존재, 사랑과 이별, 부활과 죽음, 그렇게 다양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전 존재의 내면을 하나도 남김 없이 밖으로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수화풍공은 지구의 내면을 이루고, 우리들의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지배한다. 이 때 생명에너지가 우리들 삶에 넘쳐난다. 지금 우리는 만다라의 전 우주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종승은 우리 앞에 만다라 속에서 찾아낸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에너지 표출은 중심 색인 황토와 창조를 나태내는 녹색을 주조로 삼고 있으며 그것들이 저 어둠의 심연에서 밝은 세상으로 카오스의 독단에서 조화의 사유세계로 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승 그림 카오스(3).
이종승 그림 카오스(3).
이종승 그림 카오스(4).
이종승 그림 카오스(4).

미술평론가 박종철은 이종승의 그림에 대해 '변증법적인 오토마티즘'이라 평한다.

"현란한 과학 문명을 향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상대적으로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것들-정의, 진실, 도리 등 진선미의 사랑-에 대한 분별력은 상실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어느 때는 정의와 진실을 천대까지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성의 상실은 인간의 그칠 줄 모르는 물질문명에 대한 지향에서 기인되는 필연적인 결과인지 모른다.

이러한 오늘의 상황은 그리이스 신화의 우주창조설 중 최초 단계 카오스(혼돈)와 그 흔적인 트레이스(자취)의 역설적인 연계로 유추될 수도 있으며 이것은 인류학적인 비극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이종승은 이러한 인류의 원초적인 속성을 인식하고 카오스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론으로서 색채심리학과 변증법적으로 조형을 전개해 나간다. 카오스와 코스모스 현대 문명과 카오스의 상관성과 역사성은 물론 우주와 인류의 기원부터 작가자신의 일상에 이르는 부조리까지를 자칫 실존주의에만 함몰됨을 피하면서 정반합의 상대성원리로 사유하여 조형성을 시각화해간다. 이 과정에서 의례적인 논리적인 조형성과 작가 자신의 감성적이며 심리학적인 조형성이 갈등을 일으키지만, 그 자체가 조형성의 테마, 카오스의 범주내에 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토마티즘(automatism)을 빌려오는 요인과 단서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자동기술적인 기법은 캔버스를 접합시키는 제작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다. 작가는 추상의 형식을 취하지만 화면상의 형상들이 인류의 기원과 카오스, 그리고 생명 창조의 발아점이 될 수도 있는 자궁과 성교의 시그널로 보여지는 것까지도 허용한다. 한편 주조색으로 등장되는 불루가 가지는 색상 심리학적인 논리는 비극적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외에 심연의 의미도 있다. 이 심연의 의미는 혼돈의 폐쇄적 의미와는 대조적으로 내면의 신비로움과 심오함, 그리고 다변적이고 긍정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세계를 내포하고 있다. 

크레옹, 크레파스, 아크릴릭, 오일 등을 브러싱 기법으로 구성하되, 한 쌍의 화포를 접합시키고 위 재료와 바니스 등 용해제가 상호 작용하고, 삼투압 작용과 우연성으로 형상화되며, 완전히 마른 후 이탈시켜 작품의 완성에 이르지만... 어느 한쪽 작품의 완성을 위해 전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모노크롬 ,모노타입, 스틱프린트, 데칼코마니, 데꼴라쥬 등의 동시대적 기법이 우연성과 어우러져 복합적으로 망라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한 작업과정으로 인하여 간혹, 두 점으로 이루어진 한 쌍이 유사한 조형성으로 표출되어지는 요인이 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결론적으로 추상표현주의적인 이미지가 있을 수 있지만, 브로싱 후에 캔버스를 접합시키는 순간과 그 과정부터는 우연성, 즉 오토마티즘이 결부되고 추상 표현주의와는 무관함이 은닉되어 있다. 단독의 현상, 크고 작으며, 일정한 형상의 반복 등 다양한 패턴들로 구성되어지지만 일부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인위적인 형태를 멀리한다. 카오스와 블루, 변증법과 이성, 그리고 오토마티즘이 혼재된 상황에서 작가는 아카데믹한 조형성과 감성의 조형성에서 또 다른 혼돈을 맞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혼돈과 코스모스 이전의 카오스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뒷 그늘, 공산주의의 획일성등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한 카오스가 오히려 순수할 것이다. 이종승의  카오스와 오늘의 혼돈을 대위법적으로 고찰, 순수의 동질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격식과 상식이 자리하는 권위의식은 불필요할 것이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위적이며 피상적인 구상성에 치중하는 채너럴리얼리즘과 작업정신에 있어서 차이점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매일밤 세움 작업을 한 다음 인사동 화랑가를 순회하곤 한다. 전시장에서 펼쳐진 새로운 작품을 감상하고 건강을 겸해서이다"라고 말한다. 금주와 금연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작가 이종승의 추상적 조형성이 어떤 계기로 인해 변화를 가져 올 지 모르나 그 가변성에서도 순수함이 내재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우리 우주은하 주변에는 강력한 초대 질량이 존재한다.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블랙홀이 공존한다. 공전과 배설, 흡수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1990년 2월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 지구 사진을 찍어 보냈다. 당시 보이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지구를 가리켜 창백한 점이라 칭했다. 여전히 우리 지구를 가리켜 변화무쌍한 창백한 우주의 감성으로 우린 그냥 가정할 뿐이다. 자연이란 것도 결국 인간 감성의 가정하에 씌여진 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직 보이지 않는 창백한 우주에 이종승 화백의 그림 하나가 우리 가슴의 흔적으로 존재한다.

일상이 반복되는 우주 운행의 카오스라면 이종승의 그림 흔적은 반복되는 우주 수레바퀴에 찍힌 흔적이 아니겠는가.

이종승 그림 카오스(5).
이종승 그림 카오스(5).

은하철도 999(TVA)

1. 개요

마츠모토 레이지의 만화 은하철도 999를 원작으로 하는 TV 애니메이션(1978년~ 1981년). 감독은 니시자와 노부타카.

2. 특징

우주교향시 메텔의 후속작이자 은하철도 999의 메텔과 철이 두 주인공이 함께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은하철도999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모든 은하철도999 시리즈의 시발점. 사실 극장판을 비롯한 외전작품 후속작 모두 은하철도 999 TV판이 나오면서 파생되어 시작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수차례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은하철도999 하면 대부분 이 작품을 떠올린다. TV판은 원작의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하여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결성을 지닌 옴니버스 형태로 제작되었다. 본편은 총 113화 구성으로, 쿨로 환산하면 9쿨 분량이다. 이외에 본편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따서 스토리를 좀 더 자세하게 그린 스페셜판 3편과 총집편 1편이 있다. 일본에서는 모두 방영되었으나 한국에서는 본편과 화석의 별을 다룬 스페셜 1편만 방영되었다. 본편에서는 그냥 이야기로 화석의 별 멸망에 대해 언급하지만 스페셜 판에서는 화석의 별의 멸망 장면이 30분 넘게 장대하게 그려진다. 화석의 별에서 애인의 화석을 지키는 남자의 절망감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명절에 방영되었다.

원작 기반의 에피소드는 전체의 절반 수준이고 나머지는 TV판만의 오리지널 스토리이다. 이 오리지널 스토리는 제작사에서 창작한 것도 있지만, 상당수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다른 단편 만화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덕분에 장편 애니메이션의 단점인 오리지널 에피소드의 퀄리티 저하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게 가능한 것도 은하철도 999는 각 에피소드의 배경이 되는 행성이 바뀌기 때문에 다른 만화의 내용을 각색해도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마츠모토 레이지 작품을 큰 성공으로 이끌긴했지만 자신의 색깔을 넣고 설정 변경을 많이 하던 린 타로 감독이 손을 대지 않아 굉장히 온전한 형태로 마츠모토 레이지의 색깔이 담겼다. 이 때문에 마츠모토의 성공에는 린 타로 감독 또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니만큼 대부분은 둘 다 좋아하지만. 간혹 마츠모토 레이지 작품은 원작 만화 팬들과 린 타로의 애니메이션 팬들이 서로 싸우는 경우가 있다. 만화가로서의 마츠모토 레이지 팬들은 마츠모토 작품 중 가장 제대로 애니화된 작품으로 TV판 은하철도 999를 뽑는다.

워낙에 장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당시 토에이의 SF작품 애니메이터들은 다 한 번은 거쳐갔다. 스탭이 자주 교체되었으며 매 에피소드마다 연출과 작화의 스타일이 널뛰기를 한다. 초반부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그림체와 좀 동떨어져 있는데 이는 마츠모토 레이지 작품과는 큰 관계가 없던 코가와 토모노리가 총 작화감독을 했기 때문이다. 토에이 애니메이션 전속 애니메이터는 대부분 극장판을 제작하였으므로 외주가 많았는데 주로 이나노 요시노부와 카네모리 요시노리가 있는 스튜디오 버드 하청 에피소드가 많으며 스튜디오 버드 담당 에피소드는 모두 명작으로 꼽힌다. 마츠모토 작품의 대표 애니메이터인 코마츠바라 카즈오는 극장판에 투입되었으며 극장판이 완결된 후에 들어온다. 연출가로는 이우치 슈지가 좋은 평을 받았다.

극장판의 완성도가 높고 인기가 많아 일본에서는 극장판이 TV판보다 더 인기를 끌었으나 한국에선 80년대, 96년도, 2008년, 2022년 등 TV판은 무려 4번이나 방영하고 EBS 재방까지 고려하면 무려 5번을 방영했지만 극장판은 케이블에서 90년도 말에 잠깐 방영하고 이후 2000년대 중후반엔 EBS에서 TV판만 방영되어 은하철도 999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극장판의 존재를 모른다. 사실 은하철도 999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가 쓴 은하철도 999 원작만화는 전부 TV판을 따라가며 메텔의 과거를 다룬 메텔레전드,우주교향시 메텔, 그리고 TV판의 후속작 이터널 판타지 모두 TV판의 전개를 따라간다. 일본에서는 린타로 감독의 극장판을 고평가하며 더 인기가 높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극장판이 제대로 방영되지 않았고 워낙 TV판을 많이 해준데다 TV판이 사실상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TV판이 한국에선 훨씬 고평가 받는다. 작품의 분위기도 완전히 틀린데 극장판은 청춘과 사랑 유한한 삶의 소중함 등을 주제로 하며 철이와 메텔의 연인 겸 판타지를 그린 작품이며 철이와 메텔의 관계도 연인관계로서 둘의 애틋한 사랑을 보여준다면 TV판은 메텔과 철이의 관계가 모자+연인이라는 복합적인 관계를 띄고 있으며 둘의 복합적인 관계는 이 둘이 서로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그리고 TV판은 워낙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극장판과는 달리 둘의 일상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메텔이 철이 강제로 목욕시키거나 같이 목욕하거나 같이 밥먹거나 메텔이 철이를 혼내는등 메텔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TV판은 청춘과 사랑의 판타지보다는 유한한 삶의 소중한 큰 틀을 주제로 각 별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현실적인 문제를 철학적으로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를 다시 한번 성찰해 보게 한다. 극장판이 청소년들의 시각에 맞춰 제작한 판타지+청춘+유한한 삶의 소중함을 다룬 판타지극이라면 TV판은 현실 비판적인 만화로 각 주제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우리 사회의 쓰디 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주고 굉장히 심오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며 성인들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생각하게 해주는 성인 타켓의 작품이다. 사실 TV판은 내용이 정말 심오하고 철학적이라 19세 이하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주제가 무겁고 어렵다.' 나무위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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