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 오데사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전기가 끊겨 암흑이란 뉴스를 들으니 참 난감하다.

오데사는 튀르키예와  흑해를 접경을 한 우크레인 최대 항구도시이다.  몰도바와 루마니아와 접경이다.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푸시킨이 짧게 살았던 도시이며 오데사 항구에  박물관이 있고 그의 동상이 있다. 

그의 시가 생각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Не печалься, не сердись.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В день уныния смирись,

기쁜 날이 오리니

День веселья, верь, настанет.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Сердце в будущем живёт,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Настоящее уныло.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Всё мгновенно, всё пройдет,

지나간 것 그리움이 되리라

Что пройдёт, то будет мило.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오데사 방송국에 출연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필자 김용문)
오데사 방송국에 출연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필자 김용문)

2018년, 그러니까 이청초 화가가 오데사에 있는 블레쉬노프 박물관에서 전시 및 퍼포먼스를 기획한다는 전갈이 와서 필자인 나도 오데사 전시 참가를 결정했다.

그 해 11월말 이청초, 김문태, 김용문 세 작가가 10일간 오데사에서 전시를 하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이제 곧 집으로 갑니다. 그렇다고 집이 그립다거나 또한 그대가 보고싶어서는 아닙니다. 단지, 다만 가야하기 때문이라고 해두죠.

마지막 여정으로 내일 우크라이나 오데사로 갑니다. 거기서 열흘 정도 전시와 여행 후 집으로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혹시 제가 여비가 부족해서 굶지는 않는 지 걱정되신다면 제 구좌로 지체없이 입금해 주셔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언    제 : 2018 .11. 23 (금) ~ 12. 2 (일)

어디서 : Bleschunov museum in Odessa Ukraine 

누   가 : 김문태, 김용문, 이청초 세사람이 함께'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용문 퍼포먼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용문 퍼포먼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문태 퍼포먼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문태 퍼포먼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용문 퍼포먼스. 막사발에 보드카로 흠향주를 올리고 있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용문 퍼포먼스. 막사발에 보드카로 흠향주를 올리고 있다. (사진=필자 김용문)

당시의 김용문 퍼포먼스를 이청초는 이렇게 설명한다.

'종처럼 생긴 그릇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마치  종소리같다. 보도카를 따르고 화장지를 풀고 붓으로 알지못하는 글씨를 쓰고, 이 모든 것들이  퍼포먼스다. 흰두루마기에 치렁치렁 실을 걸치고 마치 무당의 모습이다. 이모습이 김용문 선생이 펼친 bleschunov museum  모습이다.'

동심화가 김문태는 광목천위에 한글 드로잉 퍼포먼스를 했는데 큰 글씨로 '함께 가는길'이라고 썼다. 세 사람이 함께 가는 오데사 길은 참으로 즐거운 해외 원정 퍼포먼스였다.  유명한 극장에 초대되어 발레 공연 관람도 했다. 

전쟁으로 암흑이 된 오데사 도시가 걱정된다. 하루  빨리 전쟁이 끝나서 우크라이나 오데사를 다시 문화예술 실크로드로 기획되어 다시 여행할 날을 고대한다. 

아트 포 피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있는 블레쉬노프 뮤지엄( bleschunov museum)은 스비틀라나 관장과 4명의 직원이 각자 맡은 일을 해나가는 아주 잘 짜여진 개인 갤러리로서 bleschunov 라는 산악인을 추모하는 갤러리이다.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 이청초 화가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 이청초 화가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용문 퍼포먼스. (사진=필자 김용문)
블레쉬노프박물관에서의 김용문 퍼포먼스. (사진=필자 김용문)

*오데사

 ■ 위치

오데사(우크라이나어: Одеса, 러시아어: Одесса, 영어: Odesa, Odessa, 문화어: 오데싸)는 우크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오데사주의 주도이며 흑해에 접한 항만 도시이다. 기계제조(자동차 ·선박), 제유업, 인비 제조업이 있다.[1] 인구는 2015년 기준으로 101만6515 명이다.

언어는 우크라이나어가 공식 언어로 되어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이 60% 이상으로 러시아어가 더 사용된다. 이전에는 독일인, 폴란드인, 유대인, 그리스인 등이 살던 다민족 도시였으나 현재는 우크라이나인이 60%, 러시아인이 30%로 이 두 민족이 대다수인 도시이다. 1897년 오데사 거주 인구 40만3815명 중 러시아어 사용자는 19만8233 명으로 49%이었다.

 ■역사

고전 시대에는 이 부근에 큰 그리스인 정착지가 있었다. 이후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의 하지베이(Hacibey)라는 항구 도시가 1415년 콘스탄티노플의 문헌 기록에 처음 등장하며, 대공국이 이 일대의 영향력을 상실한 후 1519년 하지베이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다.

러시아-튀르크 전쟁(1787년–1792년)에서 오스만을 물리친 러시아 제국은 1794년 예카테리나 2세의 명으로 이곳에 오데사라는 이름의 근대적 도시를 처음 설립하였고, 이후 오데사는 자유항으로서 발전하였다. 19세기 동안 오데사는 러시아 제국에서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바르샤바 다음으로 큰 제4의 대도시였으며, 지중해식 건축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여러 화려한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우크라이나-소련 전쟁이 벌어진 와중에 이곳에서는 볼셰비키파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에 반기를 들고 두 차례 반란을 일으켰고, 2번째 반란에서는 오데사 소비에트 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선포되기까지 했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남에 따라 동맹국 군대들이 철수하자 끝내 소련이 점령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1년 8월 오데사는 나치 독일과 그 동맹국 루마니아 왕국의 공격을 받았다. 73일 간 벌어진 오데사 포위전은 독일-루마니아 측의 승리로 끝났고, 루마니아는 이곳에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부를 세우고 오데사와 주변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공방전 이후 오데사에서는 유대인을 비롯한 시민 수만 명이 대량 살해당하는 오데사 학살이 벌어진다. 다만 나중에 루마니아 당국은 유대인들을 독일 측에 넘겨주는 것을 거부하였고, 이로 인해 학살 사건에도 불구하고 오데사에는 유대인 인구가 많이 남게 되었다. 1944년 4월 10일 소련이 다시 도시를 해방하였고 오데사에 영웅 도시 칭호를 부여하였다.

1991년부터는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영토가 되었고, 조선, 정유, 화학, 금공, 식품 가공 등의 산업 도시로서 해군 기지가 위치해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 중에 이 도시에서는 2014년 오데사 충돌로 불리는 폭력 사태가 있었고, 이때 친러 시위대 측의 46명이 살해당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어진 이래로, 오데사는 현재까지 대규모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폭격 등의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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