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낮전에는 밭으로 낮후제는 바당밭

누대로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한다

 

그만둘 때 지났다고 등 떠밀진 말게나

반도의 해안선 따라

바다 밑은 다 봤다는

불턱의 저 할망들도

한때 상군 아니던가

 

한 사람만 물질해도 온 식구 살렸는데

어머니 숨비소리

대물림 끊긴 바다

숭고한 제주 바당에 거수경례하고 싶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오승철

 

 먼저 독자 여러분의 독해를 위하여 이 시에 등장하는 제주 고유어들을 풀이한 주석을 제시한다. ‘테왁’은 ‘해녀가 물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공 모양의, 박의 속을 파내 만든 기구’. ‘낮후제’는 ‘오후’. ‘바당밭’은 ‘바다 일터’, ‘불턱’은 ‘해녀가 물질을 하다가 나와서 불 피우며 쉬거나 옷 갈아입는 돌담을 쌓아 만든 곳’. ‘상군’은 ‘아주 숨이 길고 물질이 능숙한 해녀’. ‘숨비소리’는 ‘해녀가 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 그리고 여기서 ‘거수경례’는 군 조직의 일상 의례가 아니라 추모 관련 국가 공공의 장중한 행사에서 볼 수 있는, 격식을 갖춘 경의(敬意)의 의전(儀典).

 해녀는 제주의 삶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 ‘할망’들의 퇴장. ‘숨비소리’ ‘끊긴 바다’. 이런 바다라면 시인의 감개대로 확실히 이전의 제주 바다가 아니다. 우리는 이 시의 ‘제주 바다의 해녀들과, 해녀 명맥이 단절되는 제주 바다에 바치는 별리 의식(儀式)’과 상실의 정서에 무척 유감스럽게 공감한다. ‘대물림 끊긴 바다’에 시인은 ‘거수경례하고 싶다’고만 하였으나, 필시 최대 최고의 거수경례를 하는 작품 바깥의 시인을 볼 수 있다. 또 분명, 시인의 심정을 헤아리며 한라산 같은 파도를 일으켜 응답하는 ‘누대로 섬을 지켜온’ 해녀들의 제주 바다를 목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 바다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바다 속도 다 본, ‘그만둘 때 지났다’는 노성한 해녀들을 시인은 ‘어머니’라고 하고 그 ‘숨비소리’에 무한한 애정을 쏟는데,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산 향토애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게 그 애착의 정조가 깊고 무겁다. 그리고 ‘온 식구 살’린 그 독특한 휘파람에 그녀들의 곤고(困苦)한 ‘물질’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4.3사태의 비애도 착색되어 있다는 연상을 하게 한다. 

 

홀연히

일생일회

긋고 간 별똥별처럼

한라산 머체골에

그런 올레 있었네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

 

그해 겨울 하늘은

눈발이 아니었네

숨박꼭질하는 사이

비잉 빙 잠자리비행기

〈4.3땅〉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찔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꿩으로 우는 저녁

                             - 「터무니 있다」

 

 4.3사태 양측의 충돌에서 야기되었던 무고한 희생. 그 비극을 환기하는 시들에서 이 시는 압권이 아닐까. 특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로 시작하여 그 이승에서 사라지지 않는 ‘봄꿩으로 우는 저녁’의 공허로 끝나는 3연은 긴 부연이 필요하면서도 결국 모두 사족이 되게 할 절창이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는 그래서 한번 읽고 그 별리에 공명하고 시선을 돌리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맥락의 후경(後景)이 우두커니 서 있다. 

 제주의 역사와 정서, 풍속과 문물을 평생 천착하며 때로는 한반도 전역으로 해외로 그 시선을 확장하였던 동정과 연민의 오승철 시인이 지난 달 19일에 별세하였다. 「다 떠난 바다에 경례」는 시인이 투병하며 별세 직전에 펴낸 마지막 시집의 표제작.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그러고 보니 ‘테왁’은 해녀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둥실둥실 테왁아 둥실둥실 잘 가라’, 이 시구는 자신에게도 이른 고별사였다. 

 그런데 ‘테왁’은 갔다가 오고 다시 갔다가 오기를 반복하며 제주 바다를 떠돌 것이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