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문의 막사발실크로드 제2권(튀르키예 ALP 출판사, 2010)에 '막사발 속으로'라고 썼다.

빗소리 멈춘 새벽에 씁니다(2008.6.3)

 

오늘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통 사방 논밭에 가두고 싶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오산 빗재가마 주변을 맴돌며

세차게 작업장 주변에 내리 꽂힙니다.

이런 날에 정호승님은 빗재 막사발에

시 '허허바다'를 담습니다.

이렇게 우박처럼 소리내어

마음따라 젖는 風動(풍동), 겨자씨만한

우줏속의 우리의 속마음을

공굴립니다.

정호승님은 뭍 사람의 마음들을 보살피어

한 순간 붙잡을 言路(언로)를 궁리하십니다.

한 시의 行間(행간)을 붙들어 막사발 속으로

 續續(속속) 인도합니다.

파라다이스 트래불앤레저의 이창우님,

문학사랑 이종주님.

시인 정호승님과 함께 비오는 날에

우아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책: 막사발 히타이트를 만나다 44-45쪽) 

시와 도자의 만남 2008년.
시와 도자의 만남 2008년.

 

정호승 시도자전 카다로그.
정호승 시도자전 카다로그.

얼마 전 정호승 시인의 30여개의 시어를 받아 시도자 도판화를 만들고 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 갈 수 있지' '상처는 스승이다' '무거울 때는 가볍게 가벼울 때는 무겁게'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별은 따듯하다'

이 많은 경구(警句)들의 시어를 읽으며, 도판화(陶板畵)에 새긴다.

시가 상상력의 감성을 표현했다면, 시도자 도판화는 시각적인 감성의 결과물이다.

 

별들은 따듯하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듯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는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듯하다

 

정호승 시인의 이 자작시 얘기를 듣는다.

저는 별을 좋아합니다. 달도 좋아하지만 별을 더 좋아합니다. 

저는 밤길을  걸어가다가 달을 바라 볼 때보다 별을 바라 볼 때 더 살아 있다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달은 매일 변하나 별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야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별들이 왜 어둠 속에서 빛나며 그걸 아는 데에 평생이 걸리는지, 왜 제 인생의 어둠이 깊어져야 별이 더 빛나는지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우리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좌절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등등 인간의 수만큼이나 밤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을 애써 피해 왔습니다. 가능한 한 인생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지 않으면 별이 뜨지 않습니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밤이 없으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활짝 피어난 꽃은 어두운 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을 피우는 꽃나무도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웁니다.

정호승 도판화1.
정호승 도판화1.

사진의 도판 1은 나무에 걸려있는 밤하늘이 왠지 모르게  적막하게 느껴지는건 뭘까?

필자 역시 유년의 시절을 돌이켜 본다. 한여름 저녁별이 으슥하게 피어 오르던 날, 가족들과 함께 짚멍석 깔아 놓고 감자가 많이 들어간 수제비를 먹던 생각은 아마도19 60년 후반의 진풍경이었다.

먹을 것이 흔치 않던 시절의 수제비는 식구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먹거리였다.

정호승 시인이 자작평에 갑자기 ' 가난이란 밤'이 뭉클해진다.

정호승 도판화2.
정호승 도판화2.

사진 도판화2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는 '눈이 내리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 한다.'

필자는 가끔, 외롭다고 생각을 할 때에는 도자기 물레칸에 앉아 막사발을 빚는다.

그것이 최선의 명상이고 잊어야 할 일들을 잠시라도 잊고야 만다. 

현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독사로 세상을 마감한다.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김용문 도판2은 검은 암반위에 앉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희망과도 같은 붉은 심장으로 살고자 액션페인팅으로 휘둘렀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 전편에 흐르는 외로움의 극치를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라고 정호승 시인은 일갈한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숲속에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있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이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마라

정호승 도판화3.
정호승 도판화3.
정호승 도판화4.
정호승 도판화4.
대구 범어동 정호승 문학관.
대구 범어동 정호승 문학관.

 

지난달 말 대구 수성구 범어 3동 행정 복지센터 자리에 136평 규모의 정호승 문학관이 들어섰다. 앞으로 이 문학관에서 많은 워크숍을 기대한다.

시를 책으로 엮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르에 구분없이, 시를 형상화하는 작업, 시인과 화가, 조각가, 도예가, 예술 전 장르가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대한다.

진정한 사람의 일로 나아가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시가 막사발의 새겨지는 화신이 되고, 시를 읽어주는 어른들의 경구담긴 시어들을 낭송하는 우리 문화의 진정한 피가되고 살이 되는 인격도야의 예술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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