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보의 기획특집 <'변신은 무죄다' 추억 속 수원 딸기농장 '푸른지대'>를 읽으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내 잃어버린 기억의 한 조각을 찾았다.

특히 나와 가깝게 지내는 이용창 향토사진 작가의 옛 푸른지대 흑백사진 두 장을 유심히 봤다.

그 때 푸른지대에서 딸기를 주문하면 저울에 무게를 잰 뒤 둥그런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내줬었다.

나무그늘, 또는 비치파라솔 아래에서 딸기를 먹으며 데이트를 하는 장면도 기억난다. 요즘 같아선 커피나 와인, 생맥주를 마셨겠지만...

1970년대로 추정되는 사진을 보니 딸기 그릇을 모두 비운 젊은 여성 셋이 앉아 있다. 아마 애인이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 다른 사진은 무슨 어깨띠를 두른 여성들이 쓰레기를 줍는 장면이 담겨있다.

푸른지대 옛 사진.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푸른지대 옛 사진.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이용창 형은 그 때 수원시청에서 사진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아마도 수원시의 무슨 캠페인이나 행사가 푸른지대에서 열렸을 것이고 그때 찍은 사진들일 것이다.

푸른지대는 6.25때 수원으로 내려온 박철준 씨가 ‘대학1호’란 딸기를 재배함으로써 시작됐다. 서울대 농대가 개발한 이 딸기는 재래종과 달리 알이 굵고 껍질이 얇으며 다수확 우량종으로서 인기를 끌었다. 박철준 씨의 딸기농사가 성공하자 이웃 농가들도 딸기재배에 합류, 3만평이었던 재배농지는 7만평정도로 확대됐다.

탑동 505번지 일대 들판인 푸른지대는 1970~1980년대 수도권 대표 관광지이자 데이트 명소였다.

“푸른지대는 19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수도권 주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명소였다. 요리강습회와 친목회, 회사 야유회, 가족소풍, 특히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의 공개방송과 유명 여성잡지의 딸기 요리강습회가 매년 열렸다. 주말인파가 3만 명을 넘어섰던 적도 있었다.”

“푸른지대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자가용과 서울택시까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경찰서장까지 현장에 나와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였다. 딸기나 포도를 먹고 서호(축만제) 제방을 걸은 후 수원갈비를 먹는 것이 수원나들이의 정석이었다.”

“딸기 철이나 포도가 익을 때 사람들로 넘쳐나던 만남의 장소였다. 아마 지금 50대 후반 이상 수원사람이면 푸른지대의 특별한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푸른지대는 수원사람들에게 단순한 딸기밭이 아닌 것이다.” 수원시가 발행하는 인터넷신문 e수원뉴스에 내가 쓴 글의 일부다.

수원시가 발행한 ‘서둔동·탑동지’에 수록된 ‘푸른지대의 추억’이란 글에는 푸른지대로 인해 서울과 수원을 오가는 대중교통편까지 확장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오는 교통편은 기차와 고속버스, 택시 등이었다. 그런데 1970년부터는 수원역에 장항선 특급열차가 정차하게 됐고 1972년부터는 유신고속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유신고속에서는 일요일마다 푸른지대로 가는 버스를 하루 3~4회 운행했다.

선배들로부터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수원과 서울을 오가는 유신고속 버스는 오후 7시 정도면 버스표가 모두 매진됐다. 이 때 연인과 왔던 남자들이 일부러 막차를 놓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서해 제부도 물때를 속여 섬에서 하루 밤 묵으려했던 ‘늑대’들의 속셈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푸른지대는 1980년대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이 일대엔 수원시민농장과 푸른지대창작샘터가 자리해 새로운 수원시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서울대 농대가 축사를 지어 실험목장으로 사용한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래된 철제 구조물과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사료탑 등이다. 수원시는 서울대 농대 실험목장을 개축, 2020년 1월 ‘푸른지대창작샘터’로 변모시켰다.

푸른지대창작샘터. (사진=수원시)
푸른지대창작샘터. (사진=수원시)

일부 축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을 철거하고 생긴 공간을 빙 둘러 15개 작업실(37.7㎡ 14개, 62.3㎡ 1개)이 배치돼 있다. 작업실들 사이에는 회의실, 전시공간 등 시설이 구비된 공용공간이 있다. 현재 3기 작가들이 활발한 예술활동의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푸른지대의 넓게 트인 공간과 깔끔한 내부 구조 등 쾌적한 환경을 갖춰 작품활동에 집중하기 좋은 동시에 접근성도 좋아 작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3기 공모 당시 경쟁률이 9대1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곳에 더욱 많은 시민들이 몰려드는 것은 탑동시민농장이 있기 때문이다.

1세대당 16㎡씩 1800곳의 텃밭이 3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운데에는 연꽃과 벼를 재배하는 구역과 경관단지, 잔디밭 등이 있다. 누구나 전원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탑동 시민농장이다. 연꽃, 메밀, 꽃양귀비, 수레국화, 해바라기, 코스모스 등 계절별 경관이 뛰어나 가족 연인과 산책객들이 선호하는 수원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탑동시민농장에 조성된 경관단지. (사진=필자 김우영)
탑동시민농장에 조성된 경관단지. (사진=필자 김우영)

수원시민들은 봄이면 푸른지대에서 딸기를,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는 오목천동이나 이목동 노송지대로 포도를 먹으러 갔다. 이 수원의 명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수원시내에는 푸른지대처럼 대규모로 딸기밭을 조성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지난 2021년 5월 자매결연을 맺은 논산시가 우리나라 딸기의 대표재배지가 됐다.

아쉽지만 ‘푸른지대 부활’의 꿈은 접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푸른지대 한편에 딸기밭을 조성해 놓아 그 옛날 추억을 되새기게 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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