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릉과 건릉 전경( 사진=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융릉과 건릉 전경( 사진=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나의 고향은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다. 지금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내 옛집 터가 어디쯤인지도 알 수 없게 됐지만.

우리집안은 이른바 ‘3.8따라지’다.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면 태화동 오리장거리에 살다가 6.25 전에 남쪽으로 내려왔다. 수영리에 자리 잡았고 나는 거기서 태어났다. 봉담초등학교를 나왔고 수원북중학교, 수성고등학교도 수영리에서 다녔다. 1981년 혼인하고 나서 수원에 살림집을 차렸으나 부모형제들의 거처는 여전히 수영리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상도 거기서 치렀다. 요즘도 나의 꿈속에서는 가끔 옛 수영리의 풍경이 나타난다.

봉담읍 동네 아우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옛 추억을 회상하기도 한다. 지난봄에는 수원 종로~수원역~오목천동~수영리~양지말~내리~광산~삼천병마골~봉담읍사무소까지 세 시간 정도 걸어본 일도 있다.

비록 수원에 살지만 고향사랑이 식지 않았단 얘기다. 아니다, 나는 화성과 수원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같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들의 생애도 두 지역에 걸쳐 있다. 큰 아이도 수영리에서 태어났다. 내 두 번째 시집의 이름은 ‘겨울, 수영리에서’였다. 화성문인협회는 나와 홍신선 시인 등이 창립했다. 첫 번 째 ‘화성군사’를 만들 때 편찬위원과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

어렸을 때 ‘화성’이란 지명에 의문을 가졌다. ‘빛나는 성’이란 뜻인데 그런 성이 어디 있나 궁금했다. 당시 ‘수원 화성’은 그냥 ‘수원성’이라고 불렸기에 연관성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원에 있는 화성의 이름을 가져온 거였다.

1949년 8월 15일 수원군 수원읍이 시로 승격됐다. 그리고 현재의 화성지역은 화성군이 됐다. 그 이전까지 이 두 지역은 수원군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화성이 있는 지역은 수원이 됐고 화성이 없는 지역에 화성이란 이름이 붙었다.

수원화성 축조 전까지 수원부(수원도호부)의 원래 읍치(邑治, 고을 소재지)는 현재의 화성시 화산동(안녕동) 일대였다. 시와 군이 분리될 경우, 그 지역의 전통적인 중심지를 지명으로 삼는 관행 때문에 화성이 있는 수원읍이 수원시가 된 것이다.

어쨌거나 이젠 지역명으로 굳어져 이름을 서로 바꿀 수도 없게 됐다. 그리고 화성시는 이름에 걸맞게 빛나는 도시로 가파르게 성장해가고 있어 흐뭇하다.

화성시는 지난 2001년 ‘군’에서 ‘시’로 승격됐다. 22년이 지난 지금 인구 100만 명 특례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 내국인 93만149명, 등록 외국인 5만4158명 등 모두 98만4307명이다. 오는 10월엔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규모도 4조원이나 된다. 지자체 경쟁력 평가 6년 연속 종합 1위, 지역 내 총생산 전국 1위 도시이니 시민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된다. “100만 특례시 화성시를 누구나 살고 싶은 최고의 도시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정명근 시장의 말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수원일보는 7월 17일자 김충영 논설위원이 쓴 기획특집 ‘올해는 화성(華城)명칭 사용 230주년이 되는 해’ 기사를 통해 ‘수원’을 ‘화성’으로 부른 역사를 소개했다.

그렇다. 올해는 화성이란 이름이 생긴지 230년이 되는 해다. 수원시에 있는 세계유산 화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화성시 역시 230년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도시의 지명이 이때부터 유래됐기 때문이다.

‘정조실록 1794년 1월 15일’ 자 기사를 보자.

“현륭원이 있는 곳은 화산(花山)이고 이 부(府)는 유천(柳川)이다. 화(華) 땅을 지키는 사람이 요(堯)임금에게 세 가지를 축원한 뜻을 취하여 이 성의 이름을 화성(華城)이라고 하였는데 화(花)자와 화(華)자는 통용된다. 화산의 뜻은 대체로 800 개의 봉우리가 산을 둥그렇게 둘러싸 보호하는 형세가 마치 꽃송이와 같다 하여 이른 것이다.”

‘화산의 화(花)자와 화성의 화(華)자는 통용된다’는 정조대왕의 말씀처럼 화성과 화성시는 서로 통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화성시에서 화성 명칭 사용 230주년 기념행사라도 열면 좋겠다. 올해도 벌써 7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어떨까.

김우영 논설실장/시인
김우영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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