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공원 외곽에 식재한 소나무. (사진=김충영 필자)
만석공원 외곽에 식재한 소나무. (사진=김충영 필자)

인간과 나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다면 그 가운데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은 나무는 소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수종 중 가장 넓은 면적에 분포돼있음은 물론 개체수 또한 가장 많은 나무이다.

소나무는 척박한 곳에서 잘 적응해 습하지 않은 곳이면 어디서든 잘 자란다.

건축재, 가구재, 생활용품, 관재(棺材), 선박재료 등 다양하게 이용됐다.

거대하게 자란 노목은 장엄한 모습으로 인해 절개와 굳은 의지의 상징이 됐다. 

화성건설 시기 수원에 조성한 소나무 숲은 일제강점기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무참히 훼손되는 위기를 겪게 된다.

장안문에서 지지대고개에 이르는 구간에는 그나마 소나무림이 유지됐으나 환경오염과 매연으로 말라죽어 1995년 민선자치시대에 이르러서는 50여 그루 밖에 남지 않았다. 

수원에 소나무를 다시 심게 된 것은 민선시대를 맞으면서 시작됐다.

당시까지 수원의 시목은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는 수원지방에서 잘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게 가로수로 플라타너스(버즘나무)와 함께 많이 심어졌다. 

1995년 7월 1일 민선시대를 맞으면서 초대 민선시장에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당선됐다. 

공교롭게 같은날 심재덕 시장과 수원농고 동창인 김영철 포천군수가 수원시 장안구청장으로 부임했다. 김 구청장은 권선구청장으로 재임하다가 포천군수로 가게 됐는데 민선시대가 되면서 고향인 수원의 장안구청장으로 다시 부임하게 됐다.

당시 심재덕 시장은 수원 북쪽 이목동에 살고 있어 노송지대 소나무가 고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출퇴근을 했는데 당시까지 53주가 살아있었다.   

그 즈음 심재덕 시장은 1996년이 화성축성 2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기념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심 시장은 특별히 김영철 구청장에게 “당신이 권선구청장으로 있을 때부터 소나무에 관심을 보여 왔는데 어디 소나무 한번 심어볼 생각이 없는가?” 하고 말을 건넸다고 ‘상곡(桑谷) 심재덕 고희기념 헌정문집, 미스터토일렛 당신과 함께 라서 행복합니다’ 책에 적고 있다. 

김 구청장은 권선구청장으로 근무할 때 수원시 오목천동 곳집말 입구에 인근 산림청 산하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소나무 5그루를 기증받아 심었다. 심 시장은 이런 사연을 알고 있던 터라 김 구청장에게 소나무 심기를 권유했다. 

1940년대 노송지대 소나무. 수원방향에서 지지대 고개 방향으로 제법 많은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진=수원시) 
1940년대 노송지대 소나무. 수원방향에서 지지대 고개 방향으로 제법 많은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진=수원시) 

당시 장안구청에는 건설과장에 주양원, 녹지계장 임양순, 담당은 차선식 주사가 맡고 있었다.

주양원 건설과장은 장안구청 건설과장으로 승진하기 전 수원시 도시과 도시정비계장으로 근무하면서 만석공원 조성사업을 담당했다.

당시 만석공원 조성사업은 부족한 예산으로 추진하다보니 조경에 대한 설계가 미흡했고, 공사비 확보가 어려워 이로 인해 공사기간이 길어지고 심은 나무 또한 어린 것을 심다보니 허허벌판 같은 공원이었다.

그런 이유로 주 과장은 만석공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화성축성 200주년에 맞춰 공원 외곽에 소나무 식재계획을 수립했다.

소나무 헌수운동 계획서. 1996년 3월 19일 장안구 건설과에서 수립한 헌수 계획서. (자료=주양원 전 수원시 건설과장 제공)
소나무 헌수운동 계획서. 1996년 3월 19일 장안구 건설과에서 수립한 헌수 계획서. (자료=주양원 전 수원시 건설과장 제공)

소나무 식재 계획은 이렇게 준비됐다.

첫째, 화성축성 200주년 기념사업인 만큼 200주를 목표로 했다.

예산은 수원시 예산이 아닌 시민 헌수목(獻樹木)을 심기로 했다. 자녀 출산, 결혼, 회갑, 칠순, 팔순, 졸업, 취업, 승진 등 가정과 회사의 축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헌수 운동 추진했다. 

둘째, 나무 규격은 가슴둘레 10cm 이상으로 정했다. 당시 가격은 주당 80만원 정도했다.

셋째, 기증자를 소개하는 표석을 세우기로 했다.

장안구 녹지팀은 식재할 소나무를 선정하기 위해 주양원 과장과 임양순 녹지팀장, 2개 업체 대표 등 4명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원에 적합한 소나무를 물색하고 다녔다. 최종적으로 경남 산청군의 소나무가 선정됐다.  

당시는 민선이 시작된 지 1년 밖에 되지 않아 기부금품 모집에 관한 법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였다. 장안구 건설과 녹지팀은 구체적인 제도가 미흡함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기부금을 직접 받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수원시에서 조경업에 종사하는 모범업체로 하여금 기부금을 받는 방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정된 A업체와 B업체를 대행업체로 지정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수원시와 장안구청이 후원하는 소나무심기 모금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만석공원 소나무심기 현장 모습. 왼쪽부터 최운용 송죽동장, 김종기 수원문화원장, 김영철 장안구청장, 심재덕 시장, 주양원 건설과장, 임양순 녹지계장.  (사진=주양원 전 수원시 건설과장 제공)
만석공원 소나무심기 현장 모습. 왼쪽부터 최운용 송죽동장, 김종기 수원문화원장, 김영철 장안구청장, 심재덕 시장, 주양원 건설과장, 임양순 녹지계장.  (사진=주양원 전 수원시 건설과장 제공)

소나무 심기 사업은 당초 200주를 계획했으나 의미가 있는 행사이다보니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1996년에 추진된 소나무 심기 사업은 모두488주를 심었다. 시민과 기업헌수 312주, 임목육종연구소 24주, 수원시 예산으로 152주를 심었다.

필자는 ‘소나무가 수원의 시목이 된 이야기’를 쓰기위해 주양원 과장(전 수원시 건설국장)과 차선식 주사(현 수원시 공원녹지사업소 녹지경관과장)와 통화를 했다. 며칠이 지나자 주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영철 구청장을 모시는 식사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당시 사정을 듣고 싶으면 당신도 참석해도 좋다고 했다. 필자도 김영철 구청과도 친분이 있어 동석하게 됐다.

1996년 만석공원과 능행길에 소나무 심기를 추진했던 역전의 용사들 모습. 식사 자리는 장안문 인근 00음식점에서 12시에 시작돼 2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 당시 못다 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주양원 전 수원시 건설국장, 필자, 김영철 전 장안구청장, 차선식 현 수원시 공원녹지사업소 녹지경관과장. (사진=김충영 필자)
1996년 만석공원과 능행길에 소나무 심기를 추진했던 역전의 용사들 모습. 식사 자리는 장안문 인근 00음식점에서 12시에 시작돼 2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 당시 못다 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왼쪽부터 주양원 전 수원시 건설국장, 필자, 김영철 전 장안구청장, 차선식 현 수원시 공원녹지사업소 녹지경관과장. (사진=김충영 필자)

당시 기부금품을 직접 처리하는 방법이 없자 위에서 밝힌 대로 수원에서 조경업을 하는 A업체와 B업체를 지정해서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그런데 소나무 식재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조경회사와 일부 시민들이 불만을 토로하자 검찰에서 A와 B업체 대표를 불러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것이 아니냐며 기부금품법 위반을 이유로 며칠 동안 조사했으나 특별한 사항이 발견되지 않자 무협의 처리하고 말았다. 

담당인 주양원 과장도 불려가서 호되게 수사를 받았다고 했다. 사업을 담당했던 A업체는 환멸을 느껴 ‘조경업 면허’를 스스로 반납했다고 한다. 

주 과장은 숨은 미담도 소개했다. 당시 자민련 소속으로 1996년 4월 1일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병희 국회원이 지병으로 1997년 1월 13일 국회의원 임기 중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데 이병희 의원은 마지막 세비를 수원 만석공원 소나무심기에 쾌척하여 소나무 4그루를 심었다고 했다.  

북문파출소 앞 송정로 옛 능행길의 현재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북문파출소 앞 송정로 옛 능행길의 현재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주양원 과장은 능행길인 정자동 백조아파트(현 경남아너스빌 아파트)에서 파장동 선경합섬 정문 앞인 파장파출소 구간에 소나무를 심은 이야기도 했다. 당시 이 구간에는 플라타너스(버즘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수령이 오래돼 썩어가는 나무도 많았고 나무 상태도 불량해 도로변 상가 주민들로부터 여러 차례 민원이 제기됐다고 했다.

주 과장은 이 구간을 소나무 길로 만들기로 하고 사업구상을 구청장에게 보고했다. 구청장은 “심 시장이 수원에 1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동의를 할까?”라고 우려했다. 결론은 심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주말을 이용해 50여 그루가 넘는 플라타너스를 야간작업으로 정리했다. 

그러자 출근길에 플라타너스가 없어진 것을 보게 된 심 시장이 주 과장을 불렀다. 주 과장이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말하자 “그래 잘해봐”라고 했다고 한다. 

백조아파트(현 경남아너스빌 아파트)~파장파출소까지는 수원시 예산으로 소나무를 식재했다.

문제는 북문파출소에서 백조아파트(현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구간이 문제였다. 

당시 금곡동 지역에 LG건설에서 4200여 세대 아파트를 조성하면서 수원시에 기부금을 내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장안구청장은 LG건설로 하여금 북문파출소~백조아파트 구간에 소나무를 심을 것을 권유해 LG가 수락함에 따라 약 2km 구간에 소나무심기가 추진됐다.

이렇게 하여 만석공원 외곽과  북문파출소에서 파장파출소 구간에 소나무 가로수 심기가 완료됐다. 장안구는 소나무 가로수 심기사업을 기념하기 위해 1997년 11월 11일 장안구 정자동 ‘동신아파트 1단지’ 입구에 기념표석을 세웠다. 

소나무 심기 기념 표석. 1997년 11월 11일 장안구 정자동 동신아파트 1단지 입구에 기념표석을 세웠다. (사진=김충영 필자)
소나무 심기 기념 표석. 1997년 11월 11일 장안구 정자동 동신아파트 1단지 입구에 기념표석을 세웠다. (사진=김충영 필자)

당시는 큰 소나무를 이식하는 것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라서 장안구가 추진한 소나무 가로수 심기사업이 모범사업으로 소개되자 전국에서 견학을 오는 유명세를 탔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수원시 가로수 심기 사업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1999년 12월 29일엔 수원시 상징물조례를 제정하면서 수원시 시목(市木)을 은행나무에서 소나무로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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