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짝이 두껍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모두 듣기조차 민망한 소리다. 양심이나 체면을 잃어버린 것을 일컫는 말이어서다. ’뻔뻔함‘도 버금간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염치없이 모른 척하거나 사람의 도리를 지키지 않을 때 사용함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얼굴을 뜻하는 낯에 대한 어원은 댜양하다. 15세기 조선시대까지 얼굴은 몸 전체를 가리켰다.

얼굴은 눈 코 입 귀가 붙어있는 사람의 머리 전면부여서 ‘얼이 들어오고 나가는 굴’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7세기에  머리의 ‘앞면’ 즉 ‘안면’으로 변해 지금의 ‘낯’이 생겨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얼굴을 속된 말로 표현하는 ‘쪽’이라는 은어도 비슷한 시기 나왔다. 

얼굴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낸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감정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표정도 수없이 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얼굴은 생김새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이목구비(耳目口鼻)에 따라 호불호(好不好)도 갈리고 미남미녀 추남추녀도 결정된다. 얼굴에 따라 사람의 평가도 다르다.

심지어 ‘예쁘고 멋있는 사람은 무죄 판결을 더많이 받는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있다. 외모지상주의도 여기서 파생됐다. 덩달아 ‘얼굴 값도 못한다’는 비야냥이 생겼지만 말이다.

일본에선 이들은 ‘유감스런 미남 미녀’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천의 얼굴’이란 말도 있다. 주로 배우들이 해당하지만 변장을 잘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면서 나서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안면몰수(顔面沒收)의 전형이다.

중국엔 변검(變臉)이라 불리는 3대 전통 연희가 있다. ‘검’은 ‘뺨 검’이라는 한자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얼굴이 바뀐다'는 뜻이다.

배우가 가면에 손을 대지 않고 순식간에 얼굴을 수십차례나 바꿔 신묘(神妙)함의 대명사로 불린다.

요즘 변검술에 능한 정치인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는 세론(世論)이다.

어디 정치권 뿐이겠는가. 각종 조사와 재판으로 법 앞에선 소위 ‘같잖은 리더’들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함을 모르는 경제사범들도 예외가 아니다. 하도 많아 누구라고 콕 짚어 말하지도 못할 정도다.

말 바꾸기엔 유연하고 과오를 시인하는 데는 인색한 ‘낯짝 두꺼운’ 이들이 줄지 않는 이상 사회의 혼탁함은 정화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요즘 사회 곳곳에서 더 날 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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