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지역 언론계 ㅈ선배가 막걸리를 한잔 하잔다. 어느 집에 갈까 하다가 요즘 발길이 뜸했던 수원천변 작은 대폿집이 생각났다.

이 집이 생긴 지는 5년 쯤 된 것 같다. 후배 시인 ㅎ이 혼자 와서 수원천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에 시 한 줄을 쓰던 곳인데 어느 때부턴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 집 여주인은 음식솜씨가 좋은데다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안주를 시키면 쏜살같이 만들어 내오는 게 맘에 든다. 값도 저렴한 탓에 요즘엔 젊은이들이 가게를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옛 단골들, 특히 나이 든 ‘동네 알콜’들은 “에이 자리가 없네~”하며 수원사 옆 골목이나 수원천변에 새로 생긴 대폿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 ㅈ선배에게 이 집을 소개한 이유는 그가 좋아하는 신선한 소등골과 간, 천엽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주인은 방금 들어온 소등골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소등골은 흰 엿가락처럼 생겼는데 참기름을 넣은 소금에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감칠맛이 난다. 그러나 난 생간은 먹지 못한다. 피비린내가 싫다. “전생에 임진왜란 때 왜놈들하고 칼질을 하느라 피 냄새를 하도 많이 맡아서 그렇다”고 둘러대니 피식 웃는다. 그렇다. 내가 생각해도 퍽 썰렁한 농담이다. 그래 한여름에 눈 오겠다.

천엽과 간을 보니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이 떠오른다. 요맘때쯤 그러니까 칠월칠석(올해는 8월22일)무렵 내 고향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에서는 ‘우물고사’라는 걸 지냈다.

하루 전날 마을 동쪽에 있는 ‘큰 우물’을 모두 퍼내 내부를 깨끗하게 청소한 후 마을 어른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마을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이 때 소를 한 마리 잡았다. 인근 도축장에서 잡아온 소머리 등으로 고사를 지낸 후 동네주민들과 고기를 나눈다. 소머리, 족, 고기 부위별로 미리 신청한 대로 몫을 나눈다. 고기 값은 돈으로 내기도 하지만 가을걷이가 끝난 뒤 쌀로 갚기도 했다. 그래서 우물고사를 우리는 몫고사, 몫제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때가 되면 외지로 나가 살던 아들, 딸과 형제들도 와서 쇠고기 잔치를 벌였다.

내 어머니는 몫으로 받아온 쇠고기에 당면을 넣고 국을 끓였다. 또 천엽은 밀기울을 뿌려 깨끗하게 씻어 파와 마늘, 참기름, 소금 등을 넣고 무쳐 내놓았다.

나는 천엽무침을 곧잘 먹었다. 혼인하고 나서도 칠석날이면 내 어머니는 늘 “아범은 어렸을 때도 천엽이 수건처럼 생겼다면서도 곧잘 먹었어”라고 말씀하셨다. 며느리 들으란 소리였을 터이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아내로부터 천엽무침을 얻어먹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고구려 덕흥리고분 견우직녀 그림(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 도록).
고구려 덕흥리고분 견우직녀 그림(한성백제박물관 2016년 고구려고분벽화 특별전 도록).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까치와 까마귀가 날개를 펴서 놓은 다리인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이란 칠석의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의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왕 시대의 고분 안쪽 벽화에도 견우와 직녀가 그려져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칠석 풍속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옷과 책을 볕에 말린다 △새벽에 참외, 오이 등의 1년생 과일을 상에 놓고 절하며 솜씨가 늘기를 빈다 △북두칠성에 장수와 복을 빈다 △바닷물로 멱을 감는다 △아침 일찍 들에 나가지 않거나 집안에서 근신한다 △밀국수·호박부침 등을 만들어 먹었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에서도 칠석 풍습이 있단다. 종이에 소원을 적어 대나무에 걸어두고 지역에 따라서 칠석을 기념하는 축제도 연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칠석을 정인절(情人節)이라 하여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에게 선물을 주거나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다. 혼인신고 건수도 대폭 늘어난다고 한다.

22일은 칠월칠석날이다. 옛 칠석 풍속을 재현하지는 못할 지라도 아내에게 남편에게, 연인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하거나 저녁이라도 함께 하시길.

난 이미 아내와 약속을 잡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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