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의 물결 영원하여라

-‘수원화성문화제’ 60주년에 부처

                                         보명 이홍구

 

임금님도 한길이요 백성들도 한길인데

부자로 맺힌 인연 임금 백성 구별 없네.

화성에

천륜의 효심

정조 얼로 살아왔네.

 

천륜의 정을 담아 부자로 맺은 인연

사랑과 효심으로 온 누리에 비추리니

이 땅에

화성문화제

효심 은총 한길이라.

 

하늘이 준 효심이요 목숨으로 맺은 업보

피로 맺은 은총이라 생명줄의 길이로다.

온 누리

문화제의 꽃

영원토록 빛나리라.

 

백성과 여민동락 능행차로 다시 살아

60주년 맞이하는 행궁 광장 시민 함성.

능행차

효원의 도시

온 누리의 축제여라.

(*시조시인, 수필가, 1975년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능행차 최초 재현 담당자)

 

이홍구 선생님. (사진=한정규 화성연구회 이사)
이홍구 선생님. (사진=한정규 화성연구회 이사)

이홍구 선생님께서 얼마 전 이 시를 보내주셨다.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인 선생님은 1972년 수원북중학교 3학년 때 우리 반 담임이시면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셨다. 이 때는 시에 막 눈을 뜨기 시작했던 시기다. 선생님은 수학여행 이야기를 산문시로 써 보라고 권유했고 그 작품은 교지에 실렸다. 지금까지 시와 기사, 칼럼, 사설 등 글을 쓰고 신문을 만들며 먹고 살아 온 내 생애 첫 번째 발표작이었다.

2018년 한 인터넷 매체에 선생님과의 인연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글의 일부를 옮긴다.

"당시 월남전에 참전한 삼촌이 가져온 ’야한 사진‘을 훔쳐와 반 친구들과 몰래 돌려보고 있었는데 반장 녀석이 그걸 빌려가더니 담임선생님께 갖다 바쳤다. '아, 이거 큰일 났다. 최소한 정학이겠구나' 고민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은 빙글 빙글 웃기만 할 뿐이었다. (후일담-"문학하는 애들은 그런 거 봐도 돼"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문학단체 회원으로 다시 만난 후 지금까지도 자주는 아니지만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 중학교 때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 사이지만 이제는 문학의 길을 함께 걷는 도반이다. 어느덧 선생님은 91세 망백(望百), 그 중학생은 ‘지공거사증’을 발급 받은 지 1년이 넘은 중늙은이가 됐다.

선생님은 존경받는 교육자이자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고 식견도 높은 향토사학자다. 대표적인 공적은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능행차를 최초로 재현한 것이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1975년 제13회 ‘화홍문화제’(현 수원화성문화제) 때부터 제대로 된 고증을 거쳐 복원·재현되기 시작했다. 그전엔 가장행렬 수준의 약식퍼레이드가 ‘공설운동장’(현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펼쳐졌다.

1975년 이재덕 수원시장, 안익승 예총지부장, 김영권 수원시 공보담당관, 이흥구 수성고 교사 등이 KBS 이서구 극작가를 초빙해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수원의 전통성을 살리고 정조대왕의 유덕을 기리는 효원의 도시 특성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재현 행사 자료수집과 연출 등 실무를 맡은 이가 이홍구 선생님이었다.

처음엔 8개 고교 교장단의 추첨을 통해 수원고, 수원농고, 매향여상고, 유신고에서 학교당 60명 씩 240명이 참가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해부터는 수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를 도맡았다. 능행차는 1978년엔 인천에서 열렸던 제59회 전국체육대회에서도 시연돼 전국에서 온 선수단과 관객,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수원화성문화제.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수원화성문화제.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리고 1996년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 기념 수원화성문화제 때부터 수천 명의 인원과 수백 필의 말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규모로 확대됐다. 2016년부터는 서울에서부터 시작해 옛 행차 길을 걸어오는 대규모 행사로 거듭났고 한국을 대표하는 퍼레이드가 됐다.

정조대왕 능행차를 처음 시작한 어른, 수원의 역사는 이홍구 선생님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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