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옛 추억들과 만났다

천구백 칠십 육년 늦은 가을 하오/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일원/따가운 햇살 받으며 화성에 올랐다//낮술에 불콰해진 임병호 김우영시인/수원의 문우와 처음으로 어깨 곁고/정조를 생각하면서 화성에 올랐다//화서문 서포루 서이치 서장대/북포루 장안문 화홍문 방화수류정/외적을 방어할 보루 화성에 올랐다//아름답게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아름다움이 적을 이겨내느니라, 답한/정조의 예지로 빛난 화성에 올랐다//아름다움이 기를 꺾는다는 것을 안 임금/임병호 김우영 이정환 시인의 기를 꺾는/천구백 칠십 육년 늦가을 화성에 올랐다  -이정환 ‘화성에 올랐다’

수원에서 열린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세미나에서 만난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왼쪽)과 필자. (사진=필자 김우영)
수원에서 열린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세미나에서 만난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왼쪽)과 필자. (사진=필자 김우영)

오랜만에 이정환 시인을 만났다. 지난 16~17일 수원에서 열린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세미나에서다. 이 단체는 수원의 정수자 시인이 의장을 맡고 있는데 탄탄한 실력을 가진 시조시인들의 모임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인 이정환 시인도 이 모임의 의장을 지낸 바 있다.

위 시에도 나오지만 이정환 시인은 1976년에 처음 만났다. 서울에 왔다가 나를 볼 겸 수원에 들른 것인데 임병호 형님도 함께 했다. 그때 이 시인과 나는 수원에서 탄생한 ‘시림(詩林)동인회’의 멤버였다.

그때 우리들은 아직 문단에 등단하기 전, 파릇파릇한 ‘문청’이었다. 수원의 나와 대구의 이정환·박기섭, 부산의 최영철·조성래, 광주의 김미구, 안동의 김승종, 대전의 최봉섭, 전남 순천의 김기홍·김해화, 서울 문창갑, 제주 오승철 시인 등이 동인이었다.

이들 가운데 시조를 쓰는 이정환, 오승철, 박기섭 시인은 중앙·동아·한국 등 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돼 화려하게 등단했고 한국 시조문학계를 대표하는 중진시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들 모두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을 역임했고, 이정환시인은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을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른 동인들도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추천 등을 통해 속속 등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오승철 시인과 김기홍 시인이 세상을 떠났고 최봉섭 시인은 연락이 두절돼 생사조차 확인이 어렵다.

오랜만에 만난 이정환 시인과 밤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나혜석 거리 단골 셍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1970년대 중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순수하고 열정 넘치던 시기의 추억에 젖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오승철 시인과의 인연을 떠 올리면서 둘 다 먹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환 시인과 오승철 시인은 문창갑 시인 등과 함께 70년대 중반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내 옛집에도 방문해 밤새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눈 적도 있다.

그때 오 시인이 써 놓고 간 시 한 줄이 기억난다.

앞부분은 모르겠고 뒷줄은 제주말로 쓴 ‘뭘 허젠 하늘을 봐/뭘 허젠 하늘을 봐’였는데 아마도 ‘수영리 촌놈이 뭘 하러 하늘을 보고 있는가’라는 내용이었던 걸로 해석된다.

그도 오래 전 쓴 내 시 몇 줄을 기억하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고등학교 시절 학원문학상 당선작인 ‘달빛 속에서’ 중 ‘바다 잔잔한 일렁임/무심히 내어 미는 손길에도 달빛은 차다/...(중략)...날지 못하는 새 한 마리/자꾸만 침몰을 연습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인연은 계속됐다. 내가 가끔 제주도에 갈 때, 그리고 서울에서 문학행사가 있을 때 그는 수원에 들렀다가 제주도로 돌아가곤 했다.

오승철 시인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인 2019년 수원에서 열린 시림 번개 모임에도 참석했다.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부산에서는 최영철 시인과 그의 부인인 소설가 조명숙 씨가 왔다. 서울에서 문창갑 시인과 김승종 시인이, 전남 고흥에 살다가 평택으로 이주해 온 김미구 시인도 참석했다. 이날 제주도에서 다시 모임을 갖기로 하고 날짜까지 정했다. 비행기 탑승권도 예약했으나 태풍으로 불발됐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9년 가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 문학인 제주포럼에서였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정수자 시인과 함께 만났다. 아프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올해 부음을 받았다.

마지막 시집은 올해 3월에 펴낸 ‘다 떠난 바다에 경례’였다.

그는 “고구려 시대에도 해녀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제 대물리며 사천 년간 섬을 지켜온 그들이 퇴장하고 있습니다. 자욱했던 숨비소리도 사라지고 불턱의 잔불들도 꺼져가고 항일운동도 펼쳤던 그 기개만 역사 속에 남았습니다. 상군해녀였던 어머니도 떠나셨습니다. 저 텅 빈 바다에 무엇을 바칠까 하다가 그냥 거수경례나 하고 돌아갑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바다에 거수경례를 한 그는 5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사)화성연구회는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제주문화유적답사를 실시했다. 때마침 8~9일엔 문화재지킴이 전국대회가 제주도에서 열려 행사에도 참석했다.

2박3일의 빠듯한 일정 때문에 오승철 시인의 묘소에 갈 수 없었다.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그의 고향 남원면 위미리 바닷가에 작은 돌탑 하나를 쌓아놓고 명복을 빌었다. 그가 떠난 바다에 차오르는 눈물을 누르며 ‘거수경례’도 했다.

제주 위미리 바닷가에 오승철 시인을 그리며 작은 돌탑을 쌓았다.(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제주 위미리 바닷가에 오승철 시인을 그리며 작은 돌탑을 쌓았다.(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그날 이정환 시인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아프지 말자, 오래도록 살자,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라도 자주 만나자...’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끼리 다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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