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꽃으로 가득한 동공원. (사진=김우영)
억새꽃으로 가득한 동공원. (사진=김우영)

수원화성문화제가 끝났다고 해서 심심하지 않다. 이 가을, 수원에는 볼 것이 참 많다.

팔달산과 광교산 저수지 둘레길, 수원화성 산책길, 어느 곳에서나 가을빛이 찬란하다. 그리고 문득 처연해질 때도 있다. 나이 탓이다.

어쨌거나 어제도 나의 가을 단골 산책길을 걸었다. 화성박물관에서 행궁동 골목길을 거쳐 화서문으로 간 다음 화서공원의 억새꽃길로 올라갔다. 다시 그 길을 걸어 내려와 장안공원을 지나고 장안문에 올라 한숨 돌린 뒤 화홍문을 향했다.

방화수류정을 지나 북암문을 통해 용연으로 내려오니 소풍 나온 이들이 한 가득이다. 인근 피크닉용품 대여점에서 빌린 돗자리와 간이 테이블, 장식품을 놓고 사진을 찍거나 편한 자세로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청춘들과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들의 모습이 행복하게 보인다. 혼자 걷는 나지만 덩달아 흐뭇하다.

거기서 동쪽 성 밖, 동공원으론 억새밭이 펼쳐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억새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며칠 후면 장관을 이룰 것이다.

몇 해 전 한 매체의 칼럼에서도 억새풀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수원지방의 옛길을 연구해 학위를 받은 ㄱ박사는 화성을 축성하면서부터 억새를 심었다고 했다.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인데 억새군락지에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억새꽃은 말려서 불화살 재료로 썼다고 한다.

그 후에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지붕 이엉으로도 훌륭한 재료였다. 볏짚 이엉은 2~3년이 지나면 교체해야 하는데 억새이엉은 수분 흡수율이 낮아 20~30년 동안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치료제로도 사용됐다. 줄기나 뿌리는 이뇨작용을 돕고 해열, 해독, 풍사,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가축 사료 뿐 만 아니라 보릿고개에는 사람들도 먹었던 구황식물의 역할도 했다니 성곽주변의 억새는 단순한 관상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녁 무렵에 억새밭에 가는 이유가 있다. 억새꽃은 역광을 받았을 때가 가장 빛난다. 흰 억새꽃밭 너머로 노을이 지고 성곽의 실루엣이 뚜렷해 질 때면 환상 속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황홀하다.

해가 모두 지고 어둠이 시작되자 동암문을 통해 연무대로 갔다.

지난 6일부터 창룡문에서 ‘2023 수원화성 미디어아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 주제는 정조의 행차 중 가장 화려했던 ‘을묘년(1795년) 수원화성 행행(行幸)’이다.

‘2023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창룡문.(사진=김우영)
‘2023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창룡문.(사진=김우영)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지난 2021년 화서문일원에서 시작됐다. 지난해엔 화홍문과 남수문에서 열렸다. 장소가 넓은 만큼 규모가 커졌다. 성문과 성벽, 잔디밭까지 가로 길이 138m에 영상이 펼쳐지고 있다.

4편의 작품들이 행행의 준비-출정-행렬-도착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화려한 형상과 색감이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평가는 관객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마지막 ‘극(極, 아하콜렉티브)’이 특히 좋았다. ‘황금갑옷으로 비유되는 정조대왕이 개혁신도시 수원화성에 도착해 개혁의 꽃을 피우고, 새로운 모습으로 찬란한 미래를 만드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란다.

매일 오후 7시에 첫 상영을 시작, 40분 간격으로 총 5회를 상영하며, 마지막 5회 차는 밤 9시40분에 시작해 밤 10시에 끝난다니 시간 맞춰 가면 좋겠다.

연무대 잔디밭에 설치된 화려한 포토존. (사진=김우영)
연무대 잔디밭에 설치된 화려한 포토존. (사진=김우영)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활쏘기 체험을 하는 연무대 잔디밭에는 화려한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국화꽃밭과 다채로운 크기의 쌀알 모양 조형물, MBTI 이니셜이 담긴 큐브 장식물, LED 미디어큐브 등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또 창룡문 오른쪽 성곽 산책로에는 ‘미디어 로드’가 조성돼 있어 별빛이 쏟아지는 듯, 또는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가 날아 앉은 듯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수원의 가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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