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 빈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웃었던 적이 있다. 하늘 끝에 닿을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이들 도시에 빈대라니. 이건 우리나라 6.25 직후 때나 저기 어디 후진국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빈대 비상령이 내려졌다. 9월에 대구 계명대 신축 기숙사에서 빈대가 나타나 물린 학생들이 줄을 이었고 10월엔 인천의 한 찜질방에서 빈대가 나왔다. 서울과 경기도내에서도 줄줄이 빈대가 발견되고 있다.

이러면 내가 사는 수원 어딘가에서도 빈대가 출몰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직 빈대를 보지 못했으니 물려 본 적도 없다. 진드기는 봤다. 집에서 기르던 개가 풀숲이나 산에서 뛰놀다 오면 발가락 사이나 목 주변에 몇 마리씩 달고 와서 잡아주곤 했다.

빈대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몸이 가려운 것 같다. 매일매일 샤워를 하는 데도 말이다. 어렸을 때 이와 벼룩에 물려본 적은 있어서다.

어느 시기에 이·벼룩은 사라졌다. 가끔씩 따듯한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들에게서 이와 서캐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긴 했다.

그런데 빈대는 뜻밖이다. 검색을 해보니 ‘노린재목 빈대과의 곤충. 먹이를 먹기 전의 몸길이는 6.5∼9mm이고, 몸빛깔은 대개 갈색이다. 그러나 먹이를 먹은 후에는 몸이 부풀어오르고 몸빛깔은 붉은색이 된다’고 한다.

지방정부들은 빈대 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목욕탕이나 여행지의 숙소를 이용하지 못할 정도의 지나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시작해 스페인 갈리시아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도착하는 산티아고순례길은 더 나이가 들기 전 한번 걷고 싶은 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라는 저가 숙소들이 있는데 베드버그라고 불리는 빈대와 벼룩이 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빈대가 무서워 순례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스님들이 떠나고 절간을 불태울 만큼 무서운 빈대들이 있었다. 이 빈대 전설은 전국에서 전승되고 있다.

양주회암사지. (사진=양주시청 홈페이지)
양주회암사지. (사진=양주시청 홈페이지)

대표적인 사찰이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이다.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이 창건했고, 우왕 때 지공의 제자인 나옹이 다시 지었다. 조선 성종 때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삼창돼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번창했던 국찰(나라의 절)이었다고 한다.

전각(큰집)이 총 262칸이었고, 암자도 17개나 될 정도로 크고, 웅장하며, 아름다운 절이었다. 이런 정도의 규모는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단다.

하지만 빈대가 극성을 부려 불을 지른 후 폐사됐다고 한다.

우리 지역에도 빈대 때문에 스님들이 모두 떠나고 터만 남은 사찰이 있다. 화성시 송산면 천등산(천등리 산 7-1)에 있었던 천등사 이야기다.

1981년 6월 2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 1-5: 경기도 수원시·화성군편’에 수록돼 있다.

국난으로 인해 스님들이 오랫동안 절을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대웅전 대청 가운데 전에 없던 기둥 하나가 서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빈대가 서로 뭉쳐서 올라가서 천장까지 닿아 기둥처럼 변한 것이었다. 무서워 한 스님들이 흩어지는 바람에 절은 폐사됐다고 한다. 강화도의 전등사가 이 천등사를 옮긴 절이라는 말도 있다.

빈대에 물린 흔적. (사진=질병관리청)
빈대에 물린 흔적. (사진=질병관리청)

뱀을 지칭하는 방언인 ‘긴대, 진대’가 소리의 유사성으로 인해 빈대가 됐다는 견해도 있다. 즉 빈대가 아니라 뱀이 무더기로 출몰, 불교 교리 상 해칠 수도 없어 스님들이 절집에서 나갔다는 이야기다.

빈대는 아니지만 수원시 광교산 김준용장군 전승지 옆에도 지네 절터란 곳이 있다. 지금도 샘물터와 주춧돌, 기단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 역시 빈대처럼 지네가 점령해 차마 살생을 하지 못한 스님들이 떠났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그 빈대나 지네가 정말 곤충이었을까? 혹시 억불책을 펼쳤던 국가, 또는 착취를 일삼았던 지역 토호나 벼슬아치가 빈대와 지네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빈대 붙는다’ ‘빈대 같은 놈’이란 말이 쓰이고 있긴 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빈대는 억울할 것이다.

어찌됐건 빈대가 출몰하고 있다니 곤충 빈대건 사람 빈대건 미리 방역을 하고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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