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평택 수도사란 절집에 다녀왔다. 이 절의 주지이자 사찰음식 명장 적문 스님의 연요리 특별전시 및 품평회가 다채로운 공연과 함께 펼쳐졌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제법 추운 가운데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반가운 얼굴들도 보였다. 화성미래연구소의 김충영 소장과 이경렬·이수원 이사, 화성지역학연구소 정찬모 소장과 김민흡 연구위원, 그리고 (사)화성연구회 김관수 부이사장을 만나 반가웠다. 김관수 부이사장이 수도사 체험관을 설계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실 내가 수도사에 간 것은 평택이 이곳을 원효성사가 깨달음을 얻은 오도처(悟道處)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6년 전엔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까지 개관했다.

그러나 화성에서는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가 원효성사의 오도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가지 기록과 정황상 ‘화성 마도가 오도처'"라는 화성지역학연구소와 화성미래연구소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수도사에서는 1시간 정도 주변을 걸었다. 만약 이곳이 원효성사의 오도처가 맞는다면 과연 어떤 길로 걸어서 왔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나와 김충영 소장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다 낯선 곳,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더욱 즐거웠다.

그 여세를 몰아 다음날에도 수원천과 화성을 걸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내 발걸음은 억새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수원화성 동남각루 밖 언덕~동공원~화서공원으로 향한다.

화성과 어우러진 억새꽃이 환상적인 풍경을 빚어낸다.(사진=김우영)
화성과 어우러진 억새꽃이 환상적인 풍경을 빚어낸다.(사진=김우영)

특히 저녁 무렵 저녁 햇살을 받아 빛나는 억새꽃의 향연은 환상적이었다. 매일매일 ‘수원에 사는 행복’을 만끽했다.

세계유산 화성과 어우러진 억새밭의 장관은 그냥 그림이었다.

수원천에도 가을이 가득했다.

수원천 억새. (사진=김우영)
수원천 갈대. (사진=김우영)

얼마 전 한 매체에도 수원천에 대한 칼럼을 쓴 바 있지만 나에게 수원천은 특별하다.

1988년 당시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은 수원문화원이 발행하는 월간지 ‘수원사랑’ 주간을 맡고 있던 내게 수원천 살리기 운동 관련 기획기사를 수원사랑에 연재하자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수원천 복개 반대 운동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복개 찬성자론자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미 자연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수원천을 복개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수원천은 수원화성과 함께 환경·역사의 상징이기 때문에 복개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복개 찬반 논란은 1995년 6월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초대 민선 수원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종지부를 찍었다. 문화재를 지키고 수원천을 살리기 위해 복개를 철회한다는 수원시의 공식 발표에 진행 중이던 복개공사는 중지됐다.

그리고 ‘수원천의 기적’이 일어났다. 물고기와 새를 비롯한 동물들이 돌아왔다. 각종 꽃들이 아름답게 핀 하천에는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가 함께 흘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수원천을 걸었다. 물이 참 맑다. ‘추수문장 불염진’(秋水文章不染塵)이란 시가 생각났다.

중국 북송시대 형제 학자 정명도, 정이천의 인품과 학덕을 칭송하는 시다. 형 정명도를 ‘춘풍대아능용물(春風大雅能容物)’, 동생 정이천을 ‘추수문장불염진’이라고 했다.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면 춘풍(春風)처럼 모두를 품어 안아야 하고, 학자나 문인, 언론인의 글은 추수(秋水)처럼 차고 맑아 사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그런데 과연 내 글이 가을 물처럼 차고 맑으며 사욕이 없었던가?

맑은 물이 흐르는 수원천 양안(兩岸)으로는 갈대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억새와는 또 다른 멋이 있다. 중후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그런데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아래 사진을 보시기 바란다. 흰색이 강한 것이 억새고 갈색이 짙은 것이 갈대다. 모양도 다르지 않은가?

갈대와 억새. (사진=김우영)
갈대와 억새. (사진=김우영)

요즘 날씨가 차갑다. 새벽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금세 녹아 버리긴 했지만 첫눈도 내렸다. 점점 가을이 짧아지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러나 보라. 온천지엔 가을빛이 찬란하다. 쌀쌀하지만 옷 든든하게 입고 이번 주말 올해 마지막 가을 나들이를 해보자.

아직 수원의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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