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원님이 굴회를 어떻게 마셨나요?”

 

수원·화성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말들이 있다.

‘모처럼 능참봉 한 자리했더니 임금님 행차가 한 달에 스물아홉번’ ‘외삼촌 떡집도 맛없으면 돌아서 옆집 간다’ 등.

능참봉 얘기는 정조대왕의 효심과 연결이 돼있다. 간신히 조선 최하위 관직인 9품 능참봉자리를 얻었는데 왕의 행차가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나 됐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한 달에 스물아홉 번이라는 탄식은 지나친 과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조대왕이 아버지가 묻힌 화산능에 자주 행차한 것은 맞다. 재위 중 무려 열세번이나 화성 현륭원(지금의 융릉) 원행을 했다. 대표적인 원행은 즉위 20년인 1795년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맞아 8일간 행했던 대규모 행차 ‘을묘년 원행’이다.

외삼촌 떡집 얘기도 수원지역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명부터 떡이 들어가 있는 병점(떡 병餠)과 오목내에 떡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병점은 삼남을 오가는 길목이고 오목내는 남양과 조암 쪽으로 향하는 갈래길에 있다. 길손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준 떡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내명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는 말도 있다. ‘내명’은 ‘남양’의 수원·화성지역 사투리다. 남양은 그 옛날 도호부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큰 고을이었다. 그러니 이곳을 다스리는 원님들의 품계 또한 높았다.

1896년엔 남양군으로 개편되었다가 수원군과 통합됐으며 현재는 남양읍이 됐는데 화성시청이 자리 잡은 후 화성시 행정의 중심지가 됐다.

남양과 인근 갯벌에서 나는 굴은 유명했다. ‘강굴’이라고도 부른다. 국어사전에서는 강굴을 ‘물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도 섞지 아니한 굴의 살’이라고 설명한다.

화성시 서해 지역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탓에 남해 양식굴처럼 알맹이가 굵지는 않지만 살이 탱탱한데다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뛰어난 풍미를 자랑한다. 백제시대 왕에게 진상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식이 안 되는 자연산이니 아무나 양껏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인 것이다.

남양원님이 후루룩 들이켰다는 굴회. (사진=김우영)
남양원님이 후루룩 들이켰다는 굴회. (사진=김우영)

그런데 남양원님은 그 귀한 걸 사발에 가득 담아 물회 먹듯 후루룩 단번에 들이키니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드러내지는 못했어도 속으론 욕도 했을 것이다.

재벌 후세들이 초호화 술집에서 수백만원짜리 양주나 와인을 아무렇지 않게 들이키는 모습을 보는 수행원들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남양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라는 속담에는 다른 뜻도 있다. 음식을 매우 빨리 먹어버리거나 일처리 속도가 빠른 모습을 비유할 때 쓰이기도 한다. 크기가 작아 입에서 빠져나갈까봐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근 그 굴회를 먹었다. 아까워서 남양원님처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지는 못했다.

역사학자인 ㅎ이 환갑이라며 주변 가까운 이들을 초대한 것이다. 부인은 고로니 강굴과 함께 화이트와인을 내놓았다. ㄱ이 일본여행에서 사온 사케를 가져왔고 ㅇ은 한산소곡주를 들고 왔다.

ㅎ은 10여 년 전부터 ‘고로니 강굴’ 맛을 보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쳐왔는데 자신의 환갑을 맞아 드디어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고로니는 매향리의 옛 이름인 고온리인데 미군들이 쿠니(KOO-NI)사격장이라고 이름 붙였다. 1951년부터 54년간 마을 앞 갯벌과 땅이 미군의 공군사격장으로 사용됐다.

쿠니사격장으로 인한 주민피해는 막심했다.

1954년 미군 주둔 이후엔 연간 250일, 하루 평균 11시간, 15~30분 간격으로 포탄을 투하했다. 섬은 절반이나 날아갔다. 주민들의 형편도 섬의 신세와 다르지 않았다. 전투기 오폭과 불발탄 사고로 13명이 사망했고 22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음과 불안증세로 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도 34명이나 된다고 한다.

주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사격장은 2005년 8월 20일 폐쇄됐고 이곳엔 평화생태공원이 조성됐다.

그 고로니 어민으로부터 구입했다는 굴은 “역시!”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맛이 뛰어났다.

게다가 솜씨 좋은 부인의 손맛도 더해졌다. 생굴을 먹은 뒤엔 굴회에 굴국, 굴파전에 이르기까지 입의 호강은 이어졌다.

‘굴’하면 통영이 떠오를 정도로 통영굴이 잘 알려져 있지만 맛은 서해안 굴을 꼽는다. 서산과 보령 굴이 유명하다지만 내 입맛에는 화성에서 나는 강굴이 최고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굴이 남양의 특산물이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다.

고맙게도 1년에 한번 정도는 화성에서 나는 강굴을 먹을 기회가 생기곤 한다.

올해엔 아예 굴 좋아하는 찬구들을 모아서 화성 사강이나 매향리로 굴회 마시기 원정을 다녀와야겠다. 굴회 파는 집이 있으려나?

아무튼 굴은 지금 제철을 맞았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