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쯤일 것같다. 늦은 봄 토요일 아침 (사)화성연구회 이용창 형으로부터 “지동으로 와 봐. 여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네”란 전화를 받았다. 허튼 소리를 하지 않는 그인지라 얼른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나섰다. 화성 동쪽성벽 밖 느티나무 아래엔 동네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떡과 국수, 과일, 편육, 갓 담근 김치, 주류 등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푸짐한 음식이 마련돼 있었다. 한쪽 골목에선 젊은이들과 마을 주민들의 벽화그리기 작업이 한참이었다. 수원화성의 동쪽 노후화된 마을 지동은 마을 만들기 사업으로 오랜만에 생기를 띄고 있었다.'

2012년 4월 지동 벽화그리기에 나선 주민과 작가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2012년 4월 지동 벽화그리기에 나선 주민과 작가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지난 2018년 한 지역 언론 매체에 쓴 글이다. 이 때는 전국 골목에 벽화그리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수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시 지동에 근무하던 기노헌 팀장이 적극 나서서 지동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벽화골목을 조성했다. 기노헌은 ‘지동에 미친 사람’이어서 근무 중에는 물론 퇴근 후 지동시장 목로주점 술자리에서도 그의 관심사는 지동 마을만들기였다. 그의 희망은 지동 동장이 되어 이 사업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1년 창룡문로 89번길 389m 구간에서 조성되기 시작된 벽화골목은 총연장 5.8㎞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벽화골목이란다. ‘생태! 골목에 심다’ ‘동심! 골목에 펼치다’ ‘추억 골목과 만나다’ 등 7가지 주제의 벽화가 그려졌다. 시인들이 자신의 시를 직접 벽에 쓴 시인의 골목도 조성됐다. 그동안 벽화 그리기에 참여한 연인원은 2만 명에 달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우중충했던 골목길이 화사하게 변화하면서 관광 명소로 떠올랐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벽화엔 때가 잔뜩 끼었고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벗겨졌다. 요즘은 이곳에서 관광객을 마주치는 일도 드물다.

이 골목길은 내 산책길에서도 제외됐다.

오랜만에 행궁동 벽화골목을 걸었다. 지동 벽화골목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작품성이 높고 소소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행궁동 벽화골목’ 프로젝트는 2010년 시작됐다. 행궁동은 개발 규제로 침체된 지역이다. 국내외 예술가와 주민들은 낡고 오래된 담장 곳곳에 벽화를 그려 오래되고 침체된 마을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이 골목에 터를 잡은 예술공간 ‘대안공간 눈’은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을 기획했고 참여작가인 브라질 라켈은 행궁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마존 강 유역의 신화이야기와 접목해 담장에 벽화로 표현했다. 이것이 행궁동벽화마을 조성의 시작이었다.

‘들썩들썩 골목 난장’ 골목축제도 열렸다. 주민주도 마을 만들기, 도시재생 성공사례지로 알려져 전국에서 벤치마킹이 이어졌다.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화성사업소에서 문화시설로 지정했고 재산권 피해에 항의하고자 몇몇 주민이 벽화에 붉은 칠을 했다. 순식간에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골목은 다시 흉흉해져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다.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었던 골목 문화를 한순간에 망가트린 사태를 보며 많은 사람은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대안공간 눈에서는 다시 주민, 작가들과 함께 골목벽화를 복원하였고...(중략)...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행궁동벽화마을은 민관이 협력해 골목, 문화, 예술,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윤숙 작가의 회고처럼 위기도 겪었다.

수원시가 이 지역을 문화시설로 지정하겠다고 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주민들이 그림을 훼손했다. 라켈 작가의 ‘금보여인숙 물고기’, ‘처음아침 길’ 등 15점 가량이 사라졌다. 다행히 라켈 작가의 금보여인숙 물고기 그림 등은 복원됐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산책길에서 만난 벽화의 상태는 처참했다. 벽화가 그려진 벽은 허물어지고 그림은 페인트칠이 크게 벗겨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사후 관리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흉물로 변해버린 벽화들에 대한 수원시의 대처가 시급해 보였다.

행궁동 벽화골목길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이게 뭐야. 이걸 어떻게 보러오라고 할 수 있어?”라고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도 그냥 타지에서 온 관광객인척 했었다.

벽은 허물어지고 그림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상태로 방치됐던 행궁동 벽화골목. (사진=김우영)
벽은 허물어지고 그림은 페인트칠이 벗겨진 상태로 방치됐던 행궁동 벽화골목. (사진=김우영)
새로 단장된 행궁동 벽화골목. (사진=김우영)
새로 단장된 행궁동 벽화골목. (사진=김우영)

며칠 후 궁금해서 다시 찾아간 골목어귀엔 ‘행궁동 벽화골목 새단장’이란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허물어진 벽과 페인트가 벗겨졌던 그림은 말끔하게 새로 단장돼 있어 반가웠다.

담장이나 건물 벽에 페인트칠을 해 벽화를 그리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 몇 년 후 반드시 보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보수예산도 세워야 한다. 도시재생을 명분으로 한 일회성 사업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복원된 변화를 보니 안심이 되긴 했지만 이 또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관리하지 않는다면 몇 년 후엔 또다시 흉물이 될 것이다. 통영 동피랑 마을처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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