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대학 진학을 절체절명의 목표로 하는 한 고등학생이 있다. 놀기 좋아하지만 영리한 학생을 떠올려도 좋고 기억력은 그저 그래도 성실의 표본인 경우도 좋고 붙잡고 앉아 일일이 설명해주고 닦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여도 좋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어 하고 실패하면 실의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만 전제하면 된다. 

이 학생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부터 학교 공부에 열중한다, 조밀한 학습계획을 세워 자기 주도적으로 실천한다, 경험 많은 가정교사를 채용한다, 학원에 더 ‘투자’하고 수면 시간을 줄인다, 학교공부, 학원 다니기, EBS 청취 등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 등등

예시가 신통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 교육이 왜 학교공부와 학원·교습소에서의 공부, EBS 강의나 인터넷 강의 등 온갖 방법에 차이를 둘 수 없고 차이를 발견하기도 어려운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학교에 다니는 것이 유리한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유리한가?” “학교교육은 과연 효율적인가?”…

이런 생각을 해볼 필요도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기본적으로 그 교육이 상이한 것인가, 아니면 동질의 것인데 수준에 차이가 있을 뿐인가? 고등학교의 경우 초·중학교와 달리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진학계 고등학교가 있다면 왜 ‘국가 교육과정 기준’ 혹은 ‘학교교육과정’에 그렇게 중요한 목표가 명시되지 않는가?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다른 나라 진학계 고등학교 교육도 우리처럼 이렇게 각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각박하다는 것은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심지어 수면 시간도 모자라는 공부, 수능시험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공부, 다른 학생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답지를 고르는 ‘경쟁적 훈련’에 집중하는 ‘작업’을 당연시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이런 현상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증거 제시를 위해 해외에서 유입된 기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 가을 미국의 어느 학자가 세계 최저인 한국의 출산율 0.78명(2022년)을 확인하는 순간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EBS 다큐멘터리로 알려졌고, 12월초에는 뉴욕타임스의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이 우리의 저출산 현상은 흑사병 창궐에 의한 중세 유럽의 인구감소를 능가하는 속도라고 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그 칼럼은 이러한 전망만으로도 충분히 한국 사회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학생들을 학원으로 몰아넣는 잔인한 입시경쟁 문화, 보수적 사회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반란과 그에 따른 남녀 간 극심한 대립, 인터넷 게임 문화가 젊은 남성을 이성보다 가상의 존재에 빠져들게 한 현상 등이 혼인율 하락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이 분석이 절대적이진 않다. 그러나 출산율 감소의 원인을 분석할 때마다 등장하는 교육경쟁 문제는 그처럼 심각한 것이므로 누가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 교육학자와 행정가들의 묵묵부답이 답답한 것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국제학업성취도 검사 결과로써 현실을 덮어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그들도 이 ‘잔인한 입시경쟁 문화’를 걱정하고 있을까? 얼마나 기다려야 답을 내게 될까? 그들도 학교교육과 학원·교습소의 교육, 방송과 인터넷 강의 등에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학교교육이 ‘교육과정 기준’의 교육목표 구현에 광범위하게 노력해야 한다면 다른 형태의 대입준비에 비해 그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학교교육이 교육내용과 방법 면에서 교육내용(지식주입의 결과)에만 치중하는 학원, 방송 등의 교육과 차별화된다면 대입전형도 그렇게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사회가 날이 갈수록 학교교육을 경시하고 단편적 지식주입에 혈안인 현실이 답답해서 교육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다른 무엇보다 이 문제가 되어야 한다는 간절함을 호소하고 싶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