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원의 종각 모습. 1991년 주조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993년 10월 14일 최초 타종식을 가졌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효원의 종각 모습. 1991년 주조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993년 10월 14일 최초 타종식을 가졌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제야의 종'은 섣달 그믐날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밤 12시에 타종한다.

원래는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백팔번뇌를 없앤다는 의미로 108번을 타종하던 것이다.

종을 33번 치는 이유는 하늘 세상인 도리천(忉利天, 33천)에 닿겠다는 기원을 담고 있다. 제야의 종은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조선시대 타종행사는 1396년부터 시작됐다.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열고 닫는 시간에 맞춰 새벽 4시(오경)에 대문을 열 때, 밤10시(이경)에 문을 닫아 통행금지를 알릴 때 타종했다. 

밤 10시에는 28번 쳤는데 우주의 일월성신 28별자리에 안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새벽 4시에는 파루(罷漏)라고 해서 33번의 종을 쳤는데 33천을 주관하는 제석신께 기원하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제야의 종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9년이다. 경성방송이 1929년 정초에 '제야의 종소리’를 내보낸 것이 시초다. 이후 해방 이후 1953년부터 새해맞이 행사로 서울시가 주관해서 행사를 치렀는데, 이 때부터 국민들이 방송사의 중계를 시청하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세시문화로 자리잡았다.  

윤한흠 선생의 종로 그림. (사진=김충영 필자).
윤한흠 선생의 종로 그림. (사진=김충영 필자).

수원에서 종과 관련 기록은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윤2월 10일 기사에서 볼 수 있다. “대가(大駕, 임금이 타는 수레)가 장안문으로 들어가 종가(鐘街) 좌우 군영 앞길과 신풍루, 좌익문을 지나 중양문으로 들어섰다.”는 기록이다.

또 다른 기록은 혜경궁 회갑연에 참여한 이희평의 ‘화성일기’에 “종루 십자가(十字街)에 시정이 문을 열고 앉은 모습이 서울 종루와 같더라.”는 기록에서 당시 종로에 종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원의 종각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중반 장안문~팔달문 사이의 도로를 확장하면서 헐렸다. 이 자리에 있던 종을 팔달문 문루 2층으로 옮겼다.”

‘되살아난 수원의 옛 모습을 그린 고 윤한흠 선생의 증언이다. 이 동종은 동탄 만의사에 있었으나 수원 팔달문 2층에 위치하게 됐고 1976년 7월 3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9호(팔달문동종)로 지정됐다.

1963년 경기도청을 수원에 유치한 뒤 1964년 10월 15일 도청사 신축 기공식을 기해 이날이 수원시민의 날로 공포됐다. 수원시는 이날이 수원시발전의 분수령이 된다는 뜻에서 수원시 발전을 기원하고 시민의 날을 경축하기 위해 전야제인 10월 14일 타종행사를 했다.

1966년부터는 축제 이름을 ‘화홍문화제(華虹文化祭)’라 짓고 전야제 때마다 팔달문 2층 문루의 팔달문동종을 타종하는 행사가 열렸다. 화홍문화제 타종행사가 계속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화홍문화제’ 전야제 행사 때 타종하는 모습. 심재덕 문화원장, 이호선 시장 등이 팔달문 2층 누각에서 타종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수원시)
‘화홍문화제’ 전야제 행사 때 타종하는 모습. 심재덕 문화원장, 이호선 시장 등이 팔달문 2층 누각에서 타종을 하는 모습이다. (사진=수원시)

첫째는 누각에서 타종함에 따라 진동으로 건물에 손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종행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종이 1687년에 제작돼 300여년이 넘게 됨에 따라 낡아 훼손될 위험이 있고 종소리도 탁하고 크기(높이 123cm, 입지름 75cm)도 왜소해서 경기도의 수부도시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달문동종이 부적합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관선시대인 1991년 제18대 수원시장으로 부임한 이호선 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1991년 11월 ‘효원의 종각 주조 추진위원회’를 구성, 새 종 주조에 들어갔다. 이 시장은 팔달산 효원의 종각이 완성되기 전인 1993년 5월 3일 퇴임했다. 1년 만에 완성된 ‘효원의 종’은 후임 전영국 시장의 주관으로 1993년 10월 14일 시민의 날 전야제 행사부터 효원의 종각에서 타종행사를 갖기 시작했다. 

‘효원의 종각’에서 진행된 ‘제야의 종’ 타종모습. 심재덕 시장, 김용서 시의회 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효원의 종각’에서 진행된 ‘제야의 종’ 타종모습. 심재덕 시장, 김용서 시의회 의장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후 민선 1기 수원시장으로 당선된 심재덕 시장은 1995년 12월 31일 최초로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팔달산에서 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심 시장은 효원의 종을 시민과 관광객도 타종할 수 있도록 개방을 단행했다.

이후 효원의 종각에서는 화성문화제와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매년 열렸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점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첫째, 종은 높은 곳에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종소리가 위로 퍼지게 됨에 따라 일반 시민들에게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팔달산 정상에 있는 효원의 종 주변 공간이 부족해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민각’ 준공행사 겸 2008년 화성문화제 전야제 타종행사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여민각’ 준공행사 겸 2008년 화성문화제 전야제 타종행사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민선3기에 당선된 김용서 시장은 행궁광장 조성 시기에 맞춰 화성건설 당시 세운 종각의 자리에 ‘여민각(與民閣)’ 건설을 추진했다. 여민각은 백성과 함께 한다는 의미다. 

여민각은 2007년 1월 착수해 2008년 10월 완료했다. 준공식은 2008년 화성문화제 전야제 행사인 타종식을 겸해서 진행됐다.

여민각 종의 사면에는 인인화락(人人和樂), 호호부실(戶戶富實), 수원위본(水原爲本), 세방창화(世邦昌華)의 글귀가 새겨있다. ‘수원시민 모두 화합하여 즐겁고, 모든 가정이 부유하여 충만하니, 수원이 근본이 되어 세계화로 지방이 창성하고 번화케 되리라’는 뜻이다.

2023년에서 2024년으로 넘어가는 시간 0시에는 온 시민이 참여하는 타종행사가 열렸다.

올 한해 종소리와 함께 모든 시민이 인인화락, 호호부실, 수원위본, 세방창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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