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교사 : 어떻게 지내세요, 선배님?

고 교사 : 응, 방학이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좀 편하네. 신 선생은 어때?

신 교사 : 전 그렇지 못해요. 하루하루 개학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면 날짜 바뀌는 게 두려워요. 올해는 또 무슨 일이 있을까, 버텨낼 수 있을까 조바심을 느껴요.

고 교사 : 멋진 교사가 되자고 다짐하던 그 자존감은 어떻게 하고 그래?

신 교사 : 자신감이 떨어지니까 자존감은 저절로 사라져요. 그만두고 고시 준비할 용기 같은 건 없고 부모님 실망은 어떻게 하나 싶고 그렇다고 내가 이 좌절감, 절망감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요.

고 교사 : 그 정도야? 어떤 일이 있었던 거야?

신 교사 : 그렇진 않고요. 그렇지만 학부모로부터 폭언을 듣고 민원을 받고 지나친 개입을 당하는 교사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아요. 나도 저런 일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고요. 좀 타일러야 할 아이를 봐도 못 본 척 외면하고 싶고, 심지어 수업 중에 자는 아이를 봐도 포기하고 방관한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저도 못 본 척해버릴까 싶은 갈등을 느껴서 수업에 전념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

고 교사 : 그건 아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패기와 열정, 신념 같은 건 도대체 어떻게 했지?

신 교사 :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 소극적으로 변해가요. 예전엔 촌지를 받아 가면서도 체벌도 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맞을 짓을 했다고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자책하고 그랬다는데 우리는 그때보다 더 열심히 가르치는 것 같은데도 존경은커녕 존중도 받지 못하고 걸핏하면 비난을 받아 주눅이 들고…

고 교사 : 그야 세상이 변했잖아. 촌지 받고 체벌하고 그러던 일들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닌데도 마치 원시시대 일 같잖아? 신 선생이 옛날 일들이 그리워서 그러는 건 아닌 걸 나도 알아. 그래, 예전보다 우리가 더 열심히 가르치는 건 맞을지 몰라. 그렇지만 교육적 신념 같은 것도 더 높아졌나 하면 그건 회의적이야. 우리 교육은 지식 전달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그럴수록 지식을 많이 가진 교사보다 지혜로운 교사, 지혜를 가르쳐줄 수 있는 교사가 더 필요한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신 교사 : 선배님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고 교사 : 뭘 어떻게 해? 난 분명 과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두고 봐!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어.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냐. 살아남아야 해! 알겠어? 그렇게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임용고시 보고 했잖아.

신 교사 : 어떻게 살아남죠? 이렇게 막막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세상에…

고 교사 : “사람들이 비옥한 논을 넘겨주고, 기꺼이 햄버거를 뒤집고, 애써서 보험을 팔고, 못된 아이 몇 명을 봐주는 이유는 돈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에 나오는 말이야. 무슨 소리일까? 전에는 교사들이 촌지를 받고 체벌하고 그랬어도, 그게 나름 우리 아이 잘 가르쳐주겠지 하는 신뢰를 주었는지도 몰라. 전혀 부정적인 사례지만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학생과 우리, 학부모와 우리 사이에 새로운 신뢰 시스템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 힘으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야.

신 교사 :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요?

고 교사 : 그럼! 이건 아무래도 행정적으로는 불가능해! 더 기다릴 수도 없고 아예 기다릴 필요도 없어! 일전에 어느 TV 방송에 9세 때 시력을 잃고 미국으로 건너가 29년째 세계적인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애널리스트의 인생 드라마가 소개되었어. 그는 피아노를 배우다가 결국 일반고를 나와서 하버드를 갔는데 그때 그 일반고 선생님들은 시각장애인 학생이 단 한 명인데도 보드에 못과 선을 붙여서 분자모형을 알려주는 등 손수 제작한 교육자료로 최선을 다하더라는 거야. 나는 그게 교육이라고 생각해. 우리 교육은 지금 그 점을 간과하고 있어. 우리는 학생을 개별로 보는 교육 본연의 길을 찾아가야 해. 그런 교사를 신뢰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 나는 그런 교사로 남을 거야. 걱정 말고 따라와! 우리가 해내는 거야. 그런 교육이라면 이 나라에서도 성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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