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가지 못했다.

지난달 15일 용인시 두창리 소재 묘소에서 열린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수원시장 15주기 추모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아직 자동차 면허증도 없는 뚜벅이 신세인데다 마땅한 차편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용인 수지에 있는 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올린 다음 묘소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대중교통으로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물론 핑계다.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용인시 두창리 소재 묘소에서 열린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수원시장 15주기 추모식. (사진=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용인시 두창리 소재 묘소에서 열린 ‘미스터 토일렛’ 고 심재덕 수원시장 15주기 추모식. (사진=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전날엔 (사)화성연구회의 성신사 신년 고유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이원형 세계화장실협회(WTA) 사무총장(해우재 관장)도 나왔다. 그 역시 화성연구회 회원이기 때문이다.

그날 이 총장은 며칠 후 타지키스탄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타지키스탄에 있는 시린쇼 쇼테무르 농업대학교 장애인·취약계층 기숙사에 ‘수원화장실’을 설치하고 있는데 23일 준공식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 총장에 따르면 올해 대외 추모 행사를 하지 않는 대신 그 비용으로 타지키스탄에 화장실을 지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형, 심재덕 시장님도 거창한 추모 행사 대신 타지키스탄에 화장실을 만들어주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으실까요?”

이 총장의 말에 공감했다. 내가 아는 한 하늘나라에 계신 심재덕 시장께서는 흔쾌히 동의하셨을 것이다.

리모델링 한 타지키스탄 ‘시린쇼 쇼테무르 농업대학교’ 화장실. (사진=수원시)
리모델링 한 타지키스탄 ‘시린쇼 쇼테무르 농업대학교’ 화장실. (사진=수원시)

이 총장에 따르면 타지키스탄 ‘수원화장실’은 WTA 협력 기관인 한-중앙아시아 친선협회의 요청으로 추진됐는데 (사)미스터토일렛 심재덕 기념사업회에서 마련한 1만 1000달러(약 1500만원)에 더해 수원시가 1만 7000달러(약 2200만원)를 WTA에 지원했다고 한다.

3개소의 화장실엔 장애인 양변기와, 일반 양변기, 장애인용 샤워실, 세면대, 세탁실이 있어 몸이 불편한 학생들이 크게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다.

WTA와 미스터토일렛 심재덕 기념사업회가 외국에 화장실을 지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에 지속적으로 화장실을 보급하는 등 화장실 문화운동에 앞장섰다. 2008년부터 세계 19개국 49개소(라오스는 2월 준공 예정)에 공중화장실을 건립했다.

특히 튀르키예 지진 당시인 지난해 4월 이동식 화장실 120개를 재난 지역에 긴급하게 지원했다.

지난 2023년 2월 21일 튀르키예 지진 피해지역에 전달할 이동식 화장실 앞에 선 심영찬 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부회장(왼쪽)과 이원형 WTO 사무총장. (사진=심재덕 기념사업회)
지난 2023년 2월 21일 튀르키예 지진 피해지역에 전달할 이동식 화장실 앞에 선 심영찬 미스터토일렛 심재덕기념사업회 부회장(왼쪽)과 이원형 WTO 사무총장. (사진=심재덕 기념사업회)

재난·재해지역에는 유엔과 여러 나라에서 식량·침구·숙소 등 구호물자가 지원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필수 시설인 화장실은 가장 늦게 지원돼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은 물론 위생에도 문제가 생겨 전염성 질병 발생 위험이 크다.

이 공로로 이원형 사무총장은 지난해 12월 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WTA는 2007년 11월 22일 고 심재덕 수원시장(전 국회의원)에 의해 설립됐다. WTA는 개발도상국의 화장실을 보급, 개선하는 등의 사업을 통해 인류의 보건과 위생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국제적 민간조직이다. 초대 회장인 심 시장은 WTA 창립 당시 자신의 집을 헐고 변기 모양의 집 '해우재'를 지었다. 지금은 전시장으로 개방된 집 한 가운데엔 화장실이 들어서 있다. 화장실이 인간생활에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알리기 위한 설계였다.

심 시장 사후 유족들은 해우재를 수원시에 기증했다. 그 남편에 그 아내, 그 아버지에 그 자식들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 가운데 25억 명이나 화장실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30여 년 전엔 화장실 후진국이었다. 심 시장 이후 세계 화장실의 메카가 됐다. 중간에 일부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수원의 화장실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주목하게 됐다.

심 시장이 화장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수원시장 재임 시절이었다. 심 시장은 월드컵을 앞둔 1997년 화장실문제가 우리나라의 치부라고 생각, 아름다운 화장실운동을 전개, 수원시내 공중화장실을 호텔급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원시는 전 세계 화장실문화의 메카가 됐다.

화장실문화운동을 주도한 심재덕 시장에게는 ‘미스터 토일렛(Mr. Toilet)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WTA를 창립하는 과정에서 생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5년 전인 2009년 7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WTA는 그의 목숨을 바탕으로 창립된 단체다.

K-드라마, K-팝, K-푸드, K-뷰티, K-게임 등 코리아 브랜드의 인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메이드 인 수원’ K-화장실도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화장실이다. 나도 그동안 제법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우리나라만큼 화장실이 깨끗하고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은 없다.

이런 한국에 WTA 본부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고 분위기가 좋아도 화장실이 멀거나 지저분하면 안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의 한명이다. 다행히 수원의 음식점이나 카페, 호프집의 화장실은 대부분 깨끗해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심재덕 시장의 업적은 열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화성행궁 복원, 수원천과 서호 살리기, 월드컵 경기장 건축, 월드컵 경기유치, 수원화성 세계유산 등재, 수원화성문화제 능행차 원형 복원, 화장실문화운동 등... 그래서 어떤 이는 ‘수원의 위인’ 반열에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생각도 같다.

날이 따듯해지면 심 시장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이원형 총장과 생맥주 한잔 하면서 타지키스탄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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