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한반도 남녘에서부터 동백(冬栢)이 꽃을 붉게 피운다. 동백은 매화와 함께 추위에서 오히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정체성과 자태를 활짝 드러내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 왔고, 우리도 여러 측면에서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미당(未堂) 서정주(1918-2000) 선생이 동백꽃을 노래한 시가 떠오른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 「선운사 동구」/서정주

 

 이 시는 미당 선생이 생전에 아끼던 시들 중 하나였다. 친필로 쓰인 시비(詩碑)가 전북 고창의 선운사(禪雲寺)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작중 동백꽃은 화자가 작년에 보았던 선운사의 동백꽃과 일단 관계되면서도, 그것과 다른 성격의 동백꽃이다. 우선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존재이다. 선운사 대웅전 뒤 최고 5, 6백년 수령 3천여 동백 군락이 피운 비상한 규모의 동백꽃, 전라도 민요 육자배기 특유의 가락, 그리고 주모의 ‘쉰 목소리’와 ‘쉰 목소리’로 환유된 주모의 어떤 과거 사연. 앞 두 가지는 우리가 웬만큼 알 수 있는데, 세 번째 요소는 그 구체를 알 수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시 말미 그 ‘동백꽃’의 저층에 은밀하게 잠겨있는 그녀의 사연이 무엇인지 10대 이래 궁금하였다.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과거 사연이 비련(悲戀)이었을 것이라고 그 외곽과 향방을 ‘쉰 목소리’로 추정할 수 있다. 「선운사 동구」는 미당 선생이 1968년경에 지었다. 나무가 동일한지 여부를 떠나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란 가사가 개재된 「정선아리랑」, 새드 엔딩도 아니며 노란 동백꽃이긴 하지만 1936년 김유정의 「동백꽃」, 1964년에 크게 히트한 님 그리워하는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백영호 작곡 한산도 작사)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입견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에 미당 선생은 이미 고향의 대찰 선운사와 그 무성한 동백꽃을 잘 감상하였을 것이고, 이후 고향을 찾을 때 방문하곤 하였으니, 「선운사 동구」의 ‘동백꽃’ 관련 애초 모티프는 그것들에 앞서 선생의 가슴 한 구석에 이미 내재해 있었다고 해야 한다. 더욱이 신분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알렉산드르 뒤마의 장편소설 『춘희(동백아가씨)』(1848), 베르디가 『춘희』를 소재로 작곡한 오페라 「라트라비아타」(1853)를 선생이 문청 시절에 알았다고 할 수 있어, 동백꽃 자체가 선생에게 문학의식에서도 이미 체화된 이미지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자의 연상, 선운사 동백꽃을 시기가 일러 보지 못하고 선운사 동구로 내려와 주막에서 홀로 막걸리를 마시며 주모가 부르는 육자배기를 듣다가 작년에 보았던 동백꽃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데, 후자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화자의 그 연상은, 작중에서는 드러내지 않은 동백꽃 감상 전후에 관련된 자신의 체험과 어떤 심정에서 기인하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연상을 두고 하필이면이란 질문에 가능한 대답이며, 「선운사 동구」의 동백꽃, 그 최저층위에 스며들어 있는 동인(動因)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 상상할 수 있다. 아마 젊은 화자는 당시 사랑에 진척이 없었고 이별의 정서를 예감으로 공감하고 있었다고. 이 시를 지은 시인의 실제 삶의 한 국면과 반드시 유관하다고 여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참조할 것은 화자가 굳이 부각한 ‘육자배기 가락’이다. 즉 6박 진양조 장단의 높낮이와 길이에서 느껴지는 말의 기운. 육자배기란 이름도 그 특성에서 유래하였다. 「선운사 동구」의 ‘동백꽃’은, 육자배기 특유의 리듬과 묘연(妙然)한 기미와 분리될 수 없다. 「선운사 동구」도 동백꽃 관련 문학사의 지속과 변화로 접근할 수 있으며, 개성이 넘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끝까지 질문하게 하는 사랑의 탁월한 시이다. 선운사 동구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상기도’ 피어있는 작년의 ‘동백꽃’, 그 꽃의 저변에 은밀하게 잠겨있는 구체 사연이 지금도 궁금하다. 상상할 수는 있으나 그 세목에 정답이 있을 수 없겠다. 어떤 시는 별 의미 없거나 중도에 대응 모색이 그칠 질문을 하는데, 이 시는 우리를 궁금하게 하며 육자배기 가락에 승화되어 거듭 시도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구하다고 할 연상의 그 여인을 마주하는 젊은 화자의 공감을 공감하면서 태도도 같이할 수 있다. 이 시의 ‘동백꽃’은 그 여인으로 인격화도 되며, 일인 오페라 가수와 비슷한 존재로 고양되고 있다.     

 미완의 사랑과 그 정한을 주제로 하는 이 시를 누가 다시 깊게 읽고 사연의 세목을 상상해 대본을 쓰며, 또 누가 6박 진양조 장단의 높낮이와 길이에서 느껴지는 말의 기운에 통달해 작곡하여 오페라를 만들면, K팝의 한 후속으로 얼마나 좋겠는가. 참고로 육자배기는 윤창(輪唱)이기도 하다. 일인 독창 오페라로 만들어도 좋겠다.  

 앞에서 미당 선생의 ‘친필로 쓰인 시비가 전북 고창의 선운사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였다. 2024년 2월 현재, 그 시비는 비문인 시가 갈려진 채 비석과 기단이 선운사 주차장 맞은편으로 옮겨져 방치되어 있다. 일제 말 선생이 쓴 친일 시가 빌미가 되었다 한다. 하지만 이 사바세계에서 완인(完人)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선생을 기리는 고창의 미당시문학관에는 선생의 친일 시를 게시한 방도 정직하게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산은 산, 물은 물. 공과(功過)를 뒤섞는 혼란을 그치자. 선생의 영혼이 가끔 귀향하여 선운사의 동백꽃도 보고, 선운사 동구 주점에서 육자배기를 들으며 「선운사 동구」 시비와 그 ‘동백꽃’도 바라보며 막걸리 한잔 하시게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12일 설 연휴 마치는 날 오후에 14일자 칼럼을 쓰려고 하는데, 화면에 시인 김홍성 페이스 북 새 정보 탑재 안내가 홀연히 떠올라 반짝였다. 그는 방문자들에게 9년 전 2월 12일에 자신이 네팔에서 썼던 글을 추억으로 공유하자며 게시하였다. 그는 미당 선생에게서 남다른 사랑을 받았는데, 1980년 9월 어느 날  일제 말 잡지에 실린 선생의 친일 시를 복사해 후배들에게 말없이 나누어주었다. 이후 격동의 세월이 흐르고 흘렀고, 네팔에서 도합 9년 우거하다가 귀국한 시인은 아마 미당 선생과의 유다른 애증에 두고두고 홀연히 선생과 선생의 시를 반추하였던 것 같다. 시인은 「랄리구라스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에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랄리구라스가 피는 설산 기슭의 봄 … 청춘남녀가 산에 나무하러 다니면서 연애 걸 때 가장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소도구가 랄리구라스이다. 설산 히말라야 산골에 살면서 어여쁜 처녀의 나뭇짐에 랄리구라스 꽃을 얹어 주는 총각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렇게 맺어진 부부였는데 남편은 어디론가 떠나고 아내는 오늘도 나뭇짐을 지고 혼자 바위 고개 언덕을 오르내린다. 눈물날거다.… 다발로 피는 꽃이어서 우리나라의 진달래를 다발로 묶은 것 같으며 나무는 진달래보다 몇 배나 더 굵고 키가 크다.… 꽃 색깔은 주로 빨강이지만 드물게 흰색이나 분홍색, 또는 노란 색이나 보라색 꽃송이가 달리는 나무도 있다. 랄리구라스는 입술 연지처럼 새빨간 꽃송이가 가장 흔한데, 랄리란 바로 그렇게 붉다는 뜻이다.… 네팔의 국화(國花)이기도 하다. 네팔 산골의 봄은 2월부터다. 2월이나 3월의 솔루쿰부나 안나푸르나 혹은 랑탕 계곡의 랄리구라스 숲길은 '부처님 오신 날' 연등을 달아놓은 듯 찬연하다.… 설산 기슭의 붉은 꽃 랄리구라스는 우리나라 지리산의 진달래처럼 화약 연기 속에서도 피고, 선혈이 스민 땅에서도 핀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해마다 더욱 붉게 피고 더욱 붉게 진다. 

 고인이 된 미당 선생이 여생을 네팔에서 보냈다면 선운사 동백꽃을 노래하듯이 랄리구라스 꽃을 노래했을 것이다. 랑탕 히말 가는 길 주막집 마당에 떨어진 랄리구라스 꽃을 보면서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 작년 것도 아닌 시방 것이 저토록 목이 쉬어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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