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술벗들의 나이는 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여서 이른바 ‘지공거사증’(지하철 공짜로 탈 수 있는 카드. 만 65세에 발급)소지자들이다. 손자 손녀가 있는 할아버지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때도 장소도 없이 핸드폰에 저장된 손주 사진을 보며 헤벌쭉 웃는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까지 하니 바보가 따로 없다.

내 누이동생의 남편, 그러니까 매제도 얼마 전 외손녀를 얻었는데 우리 형제들 만날 때마다 영상통화를 하며 온갖 바보 같은 표정을 다 짓는다. 물론 그래도 밉지는 않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겉으로는 “팔불출 같으니라구...쯧쯧” 혀를 차면서도 속으로는 손주 자랑을 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지난해 5월 오랜 친구들과 한잔 하고 택시를 탔는데 오랜만에 구름을 뚫고 나와 휘영청 밝게 뜬 달이 나를 따라왔다. 고향 화성시 봉담읍 수영리 앞을 지나는 길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2012년과 2013년 세상을 떠난 부모님이 생각났다. 내일이 어버이날인데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릴 수 없다는 허전함, 생전에 효도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달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달에 부모님 얼굴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못난 자식을 저승에서까지도 걱정하고 계실 어머니 아버지...그날 유난히 두 분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런 중에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사위다. ‘저녁을 같이 하자는 건가’ 지레 짐작을 했는데 아니었다. 

함박꽃.처럼 기쁜소식이 왔다 (사진=김우영)
함박꽃.처럼 기쁜소식이 왔다 (사진=김우영)

“아버님, 기쁜 소식입니다. 집사람이 아이를 가졌답니다!”

병원에 갔는데 임신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술이 확 깼다.

“아이구 고맙다! 고맙고 또 고맙다” 그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두어 달 후 보내준 영상에는 팔다리를 꼼지락 거리는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힘차게 심장 뛰는 소리는 마치 증기기관차가 뿜어내는 소리 같았다.

딸의 임신 소식에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딸 부부는 혼인한지 8년이 지났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다. 개를 한 마리 데려와 자식처럼 길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드디어 2024년 1월 9일 내 외손자 강현(姜賢)이 태어났다. 울음소리는 우렁찼다. 이름은 내가 지었다. 중견화가이면서 사주와 성명학을 공부한 화성연구회 강희수 사무총장에게 보여줬더니 아주 좋은 사주고 훌륭한 이름이란다.

태어난 후 두 이레무렵의 손주 모습.
태어난 후 두 이레무렵의 손주 모습.

장인·장모까지 잘 챙기는 착한 사위와 살림꾼 딸에게 찾아온 이 은총에 눈물이 났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점점 눈물이 흔해지고 있지만 이 소식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과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돌봐 주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나도 그 ‘손주 바보’ ‘바보 할아버지’ 대열에 합류했다. 자다가도 히히히 웃는다. 아내는 일주일에 3~4일은 손주를 돌봐주러 간다.

고맙다. 가장 기쁘고 큰 선물을 받은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ㅇ형과 ㅎ박사(그들도 얼마 전 할아버지가 됐다)를 부추겨 소원을 잘 들어준다는 서산 부석사에 가서 손주, 딸과 사위, 우리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왔다. 아내도 성당에 갈 때마다 기도를 하고 있단다. 이 세상에 잘 왔다. 아가야. 네 다른 이름은 ‘기쁨’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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