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구회 2대, 3대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축사를 하는 김이환 화성연구회 초대이사장. (사진=화성연구회)
화성연구회 2대, 3대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축사를 하는 김이환 화성연구회 초대이사장. (사진=화성연구회)

수원지역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미술관, 박물관 하나 없던 도시였다. 그런데 2001년 수원 경계지점인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돼지사육장을 개조해 사립 ‘이영미술관 (관장 김이환)’이 개관됐다. 이는 미술 관련 시설이 없던 수원 용인지역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이영미술관은 많은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나 한국미술계의 거두인 박생광 화백과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소장한 미술관이다.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은 아버지가 경남 고성에서 서당 훈장을 지내서 어려서부터 서예를 접하면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할 때 집 가까이에 표구점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여다본 것이 미술작품과 인연이 됐다. 

어느 날 주인이 좋은 매화 한 폭이 있다고 사두면 어쩌겠냐고 권했다. 영남지방에서 매화로 꽤 알려진 황매산(黃梅山) 작품이었다. 당시 적은 월급으로는 과한 거금을 주고 덥석 산 것이 “길을 잘못 들어서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아내의 지청구를 들으며 월급을 쪼개어 자잘한 골동품과 그림을 샀다.

그러다가 근무지를 서울로 옮겼는데 마침 친구가 인사동에서 가게를 열었다. 친구로부터 박생광 화백의 '흑모란'이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마침 진주 사람이라고 했다. 

박생광은 서울 수유리에 살고 있었다. 1977년 늦은 봄 박생광 화백의 전시회 소식을 접하고 흑모란을 보고 싶은 생각에 전시회장에 갔는데 흑모란이 이미 팔린 뒤였다. 흑모란에 대한 관심은 수유리로 발걸음이 향하는 계기가 됐다.

수유리를 자주 찾게 됐고 박 화백의 곤궁한 모습을 보면서 측은하게 느껴져 조금씩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박 화백은 “이제 인생 마지막에 맘 놓고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2008년 6월 2일 이영미술관 신축개관 행사 때 박생광 화백의 명성황후 그림을 해설하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2008년 6월 2일 이영미술관 신축개관 행사 때 박생광 화백의 명성황후 그림을 해설하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 때부터 박 화백의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구하기 힘든 화구와 물감을 대게 되면서 박생광 화백은 일생일대의 역작을 남기게 된다. 이때 그린 ‘명성황후’ 등 불후의 명작 100점의 작품을 이영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2008년 6월 2일 이영미술관 신축개관 행사에서 전혁림 화백의 통영앞바다 그림 앞에서 기념행사를 갖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2008년 6월 2일 이영미술관 신축개관 행사에서 전혁림 화백의 통영앞바다 그림 앞에서 기념행사를 갖는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영미술관의 또다른 작품은 전혁림 작가의 작품이다. 전혁림 화백은 통영 출신이다. 1987년 부인 신영숙씨가 전혁림의 그림을 사오면서부터 통영 앞 바다의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어 전혁림 작품을 수집하게 됐다. 2003년부터 5년간 서울에서 통영까지 왕복 760km를 매주 토요일 빼놓지 않고 오갔다. 

통영을 갈 때마다 부부는 화가에게 용돈을 드리며 “다음 주에 다시 뵈러 올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달라"고 청했다. 전 화백은 부부가 내준 ‘숙제’를 충실히 수행하여 1050개나 되는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새 만다라’를 5년 동안 마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그린 작품 200여점을 이영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후 김 관장은 미술관 건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20여 년간의 공직을 마칠 무렵 효성그룹에서 신갈에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적임자로 발탁돼 신갈골프장 대표이사를 맡았다.

김이환은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먼저 토지를 매입하고 골프장 공사를 추진했다. 그러면서 노후를 생각하고 두 곳에 토지를 확보했다. 한곳은 돼지사육장(양돈장)을 짓는 부지로, 한곳은 미술관을 지을 목적으로 토지를 확보했다.

1984년 1월 19일 ‘신갈관광개발(주) 김이환 대표이사’가 수여한 김충영 감사패. (사진=김충영 필자)
1984년 1월 19일 ‘신갈관광개발(주) 김이환 대표이사’가 수여한 김충영 감사패. (사진=김충영 필자)

골프장 건설부지 확보가 마무리되자 행정절차를 추진해야 했다. 그런데 신갈골프장(현 태광골프장)은 행정구역은 용인군이었으나 절반은 수원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되어 수원시와 용인시의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때 필자는 수원시 도시과 도시계획 담당 실무자로 김이환 신갈골프장 대표이사를 처음 만났다. 신갈골프장이 마무리 되자 그동안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는데 필자도 감사패를 받았다.

이후 효성이 골프장을 한보그룹에 매각하면서 김이환 대표는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를 기다리는 곳은 LG그룹에서 조성하는 경기도 광주의 골프장 건설현장이었다. 이후 완성된 LG희성컨트리클럽을 운영하다가 미술관 건립을 결심하게 된다.

이미 마련한 신갈골프장 입구 토지에 미술관을 짓기 위해 용인시에 인허가를 타진했다. 용인시는 그곳이 국토이용계획지구에 편입되어 도시계획이 수립되지 않아 인허가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풀어야 할 지 막막하던 중 수원시에서 도시계획을 오랫동안 담당한 필자가 생각났다고 한다. 이 때가 1998년 필자가 수원시 도시계획과장 때였다. 김이환 대표와 필자의 인연은 이렇게 다시 연결됐다.

그때 필자는 골프장 앞의 부지는 도시계획 절차가 늦어져 인허가가 어려우니 다른 대안을 생각해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침 그 무렵 양돈장의 운영이 어려워 폐업을 한 상태였다. 한번 가보니 진입도로도 불편하고 돼지축사가 여러 동이 산재되어 미술관으로 쓰기에는 적절치 못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동쪽의 동산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생각했다.

양돈장이 이영미술관으로 변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양돈장이 이영미술관으로 변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김이환 관장은 돼지사육장(양돈장)이라는 제약 여건에도 불구하고 반전 이미지를 살려 변신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추진했다. 또한 동쪽 동산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세상에 없는 미술관으로 탈바꿈 시켰다. 

이렇게 하여 2년여의 준비를 거쳐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2001년 6월 이영미술관이 정식으로 개관했다. 

이에 앞서 1997년 12월 6일 수원화성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필자 등이 중심이 되어 ‘수원화성을 사랑하는 모임’이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 무렵 회원이 30여명이 넘게 되면서 사단법인을 만들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당시는 이미 회원은 확보된 상태여서 문화 마인드를 겸비한 불편부당한 지도자를 찾을 때였다. 

화성연구회 현판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성연구회 현판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이 때가 돼지사육장 개량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로 김이환 관장은 수원화성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지식을 겸비하고 있을 때였기에 필자와 당시 수원시 수원시홍보지 ‘늘푸른수원’ 김우영 편집주간은 김 관장을 대표로 모시자고 제안했다. 많은 회원들이 공감을 해주었다.

우리의 간곡한 제안을 김이환 이영미술관장이 수락함에 따라 ‘화성사랑모임’은 2년여의 준비를 거쳐 드디어 2001년 5월 21일 ‘사단법인 화성연구회'로 출범하게 됐다. 

태광골프장 입구에 새로 지은 이영미술관.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태광골프장 입구에 새로 지은 이영미술관.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영미술관이 개관 4~5년을 맞을 무렵 위기가 닥쳐왔다. 한국토지공사에서 영덕리 일원에 택지개발사업지구를 지정하면서 용인~서울간 고속도로가 이영미술관을 관통하는 계획이 추진됐다. 미술관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 때 김이환 관장은 “이왕 옮길 바에 ‘세계유산 수원화성’ 인접지에 이영미술관을 건립하자”고 제안했지만 수원시가 받아들이지 못해 무산됐다. 

마침 태광골프장 입구 지역의 도시계획 절차가 마무리됨에 따라 2008년 6월 2일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55-1번지에 미술관을 신축해 문을 열었다. 

김이환 관장은 ‘화성을 사랑하는 모임’ 2년여와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장’ 4년 임기 2기를 담당하는등 화성연구회 초기 10년을 맡아 활동함으로써 화성연구회가 전국의 문화재지킴이 가운데 모범단체로 발전하기까지 큰 역할을 했다. 

김이환 초대이사장(이영미술관장)이 기증한 화성행궁내 소나무. (사진=김충영 필자)
김이환 초대이사장(이영미술관장)이 기증한 화성행궁내 소나무. (사진=김충영 필자)
이영미술관에 있던 석재 조각품 8점을 일월수목원에 기증했다. 일월수목원 개장행사 때 필자가 촬영을 했다.(사진=김충영 필자)
이영미술관에 있던 석재 조각품 8점을 일월수목원에 기증했다. 일월수목원 개장행사 때 필자가 촬영을 했다.(사진=김충영 필자)

화성연구회 초대 김이환 이사장(이영미술관 관장)은 수원과 세계유산 수원화성을 빛내는 일에도 많은 공로와 참여가 있었다. 화성행궁과 행궁광장에 소나무 15그루를 기증했고, 일월수목원에 석재 조각 작품 8점을 기증했으며, 수원의 문화예술 분야 자문위원과 수원문화재단 이사 등으로 미술 분야의 자문을 한 바 있다. 

김이환 초대 화성연구회 이사장(이영미술관 관장)은 세계유산 수원화성을 빛내는 일에도 앞장섰으며, 박생광, 전혁림이라는 화가를 적극 후원함으로써 두 작가로 하여금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했다. 수원 용인지역의 미술인들에게 갈증을 풀어준 선구자의 길을 걷고 지난 3월 11일 89세로 영면했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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