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동일한 환경과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너무나 부정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또 어떤 이들은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부정적인 것이 다 나쁘다는 것이나 긍정적인 것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부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객관화될 수도 있고, 또 매사에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살아가다 보면 객관성을 잃어버릴 때가 없지 않다. 부정을 위한 부정을 하거나 부정을 보면서도 긍정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그러나 충분히 긍정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정한다는 것은 공동체에 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고 성장과 성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긍정의 사람은 자신의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에도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는 자가 된다.

조물주께서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다음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실 때마다 긍정으로 하신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부정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그분은 항상 긍정으로 다가오셨다. 그러므로 긍정의 사람이 돼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을 닮아 살아가는 삶이기에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고 복이 되는 것이다.

긍정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먼저는 긍정의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자기인식에 있어서 나는 우연히 존재하는 자가 아니다. 어쩌다가 생겨난 자도 아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조물주의 작품이다.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지음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뜻이 있고 그분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적 가치가 그분의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존귀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가? 그 가치로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라 그럴 때에 비로소 긍정의 사람이 돼 긍정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매사에 할 수 있다는 긍정적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안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러한 말은 한계를 지닌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누가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누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일본의 지진과 해일, 쓰나미로 인해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힘의 한계를 더욱 많이 느낀다. 그래서 할 수 없다. 못한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의 대상, 신뢰의 대상이 있다. 그분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다는 것이다. 그분을 믿고 신뢰하면 그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으로 인해 사람들은 할 수 없다에서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란 사람이 나온다. 원수의 나라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마주하고 나선다.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고 전쟁의 경험도 없고 무기도 없다. 전쟁터로 나가는 자로서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한 그가 담대하게 나간다. 적극적으로 용맹 있게 나간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조물주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신앙심, 긍정의 힘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다양한 인간관계 때문에, 사회적 환경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긍정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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