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조의 우리문화편지]

세종,  《구소수간》 한 권을 천 번 읽다


“구산이 팔뚝을 들어 보이며 말하기를, ‘나의 이 팔뚝이 책상에서 떠나지 않은 지 30년이 된 연후에 도(道)에 나아감이 있었다’ 하였고, 장무구(張無垢)가 귀양 가서 매일 새벽에 책을 안고 창 아래에 서서 14년을 읽었는데 돌 위에 두 발자국이 남았다.

조중봉(趙重峰) 헌(憲)이 밭두둑에 나무를 걸쳐놓고 책을 펴놓고는 소를 몰고 오가면서 섭렵(涉獵)하였다. 밤에는 또 어머니 방에 넣는 불빛에 책을 보았으니, 옛사람은 공부를 이처럼 열심히 하여 남보다 크게 앞섰다.”

이 글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48권에 나오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이 얼마나 공부를 치열하게 했는지 알 수 있지요. 세종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면서도 글 읽기를 그치지 아니하여 병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러자 태종이 내시에게 명하여 세종 처소에 가서 책을 모두 거두어 오게 했지요. 이때 구양수(歐陽脩)와 소동파(蘇東坡)가 쓴 편지글을 모은 책 《구소수간(歐蘇手簡)》 한 권만이 병풍 사이에 남아 있었는데, 세종은 이 책을 1,100번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머리가 나쁘기로 유명했던 조선 중기의 시인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사기(史記)》와 《백이열전(伯夷列傳)》을 1억 1,100번이나 외웠다 하여 호가 억만재(億萬齋)일 정도였다고 하지요.

또 고웅척이란 이는 벽으로만 둘러싸인 빗장이 없는 집을 만들고 3년간 《대학》과 《중용》을 읽고 담을 헐고 나왔으며, 지영(智永)이란 이는 천자문을 800번이나 베껴 썼다고 합니다. 이렇게 옛사람들은 공부를 머리만 했던 게 아니라 치열한 노력의 산물로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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