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건강은 유전적 그리고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이라도 생활환경, 즉, 생물학적·물리적·화학적인 요인을 포함한 환경 전반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근대 이전에는 전염병이나 전쟁 등과 같은 외적 요인이 인간의 수명과 건강에 영향을 미쳤으나 근대를 걸쳐 현대에 와서는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물질에 의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겨울이 계속되고 봄을 앞두면서 건조함이 더해가고 있다. 기상예보에서 가끔 들려오는 황사주의보와 건조주의보에 가습기라도 꺼내놓고 싶지만, 지난해 급성호흡곤란증후군과 원인 미상의 폐 손상 원인물질로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가 생각나서 왠지 선뜻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두려운 건 가습기 살균제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선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입하든 대형 백화점에서 구입하든 모든 공산품의 안전성과 유해성은 입증된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반면 우리 주변에선 제조사를 알 수 없는 수입품들도 부지기수일 뿐만 아니라, 성분 표시가 되었더라도 일반인의 입장에서 이것이 인체에 얼마나 무해한지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찾기 힘들다. 대부분 그냥 믿고 구입한다.

일반적으로 화학물질은 우리의 생각보다 그 범위가 매우 크다.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인트나 살충제 같은 화학물질로부터 일회용품, 세제,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장기간 노출되거나 기준량 이상 사용할 경우 인체에 부작용을 끼치거나 생태계에 축적되어 먹이사슬을 통해 농축되기도 한다.

최근 아토피나 새집 증후군, 환경 호르몬의 원인도 일부 화학물질에 의한 부작용이라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먹거리나 옷가지 등 그 어떤 것 하나라도 가공을 거치지 않고는 소비자의 손에 주어지질 않는다. 결국 생활 속 화학물질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피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유해물질이나 발암물질에 의한 사건기사들을 보면, 일반인들의 인식은 높아져 가고 있지만 정보제공수준은 그에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소비자들은 잘못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을 의지하는 경우도 적잖다. 아기의 기저귀나 머그컵 하나라도 혹여 뉴스에 나왔던 제조사가 아닌지 하는 불안에 확인해 보고 싶어 하지만 신뢰성과 접근성 있는 기준이 없다. 과연 내 주변에 존재하는 화학물질은 얼마나 안전한 것인가.

높은 교육열과 생활수준, 첨단 바이오공학 기술을 자랑하는 우리의 이면에는 일반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 작은 배려가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심화될수록 더욱 건강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시간이 갈수록 환경과 기후변화에 따른 식품과 의약품의 변화 또한 커질 것이다. 사건이 터져야만 조사하는 사후약방문식의 처사가 앞으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부처의 철저하고 신뢰 있는 화학물질의 사전관리는 국민보건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손쉽게 생각하는 생활 주변의 화학물질이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문제와 함께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현재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재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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