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겨우 내내 베란다에 놓여있던 화분들의 분갈이를 하였다. 분갈이를 하면서 모 단체에서 나누어 준 지렁이가 만들어 놓은 분변토를 함께 섞어 주었다. 요즘 각 지자체나 환경단체에서는 지렁이 분변토를 이용한 음식물쓰레기 처리와 유기농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홍보를 하고 있다. 밟으면 꿈틀한다던 지렁이의 힘을 이제야 인간이 인정해준 것일까.

어릴 적 비 오는 날이면 으레 땅 위로 올라와 기어 다니던 지렁이들이 기억난다. 어릴 적이야 그저 징그럽고 밟기 싫어 피해 다녔지만, 언제부터인지 비가 오는 장마철에도 지렁이를 땅 위에서 만날 수 없게 되기 시작했다. 딱딱한 콘크리트가 지렁이의 숨통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농약과 살충제는 토지를 오염시켰고, 먹이사슬 피라미드 제일 아래에 있는 지렁이가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인가 요즘 도시에서는 지렁이 보기가 쉽지 않다.

생태학자들은 지렁이를 ‘지구의 쟁기’ 또는 ‘땅속의 농부’라고 한다. 땅속 깊숙이까지 부지런히 땅에 구멍을 뚫어 공기를 순환시키고 빗물을 통과시켜주며, 유익한 미생물을 번식시켜준다. 게다가 썩은 식물이나 동물을 섭취하여 질소나 칼슘과 같은 식물 생장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를 이용해 지렁이 유기농법이라 이름 지어 웰빙열풍을 타고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미 인간이 농사를 시작하던 때부터 지렁이 농법은 존재해왔다.

예쁘고 때깔 좋게 만들어 상품성을 높이고 좁은 땅에서 더 많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밭에 뿌려댄 화학비료와 살충제들은 결국 우리의 밥상에 고스란히 올라와 우리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살충제를 뿌리는 행위 자체가 단순히 대상 식물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때에는 미처 생각 못했으리라.

게다가 도시는 어떠한가. 도시화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땅을 포장하고, 지하철이나 빌딩의 침수를 막기 위해 지하수위를 낮추기도 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놓지도 않으면서 무한정 지하수를 퍼 쓰고 있다. 이렇듯 토지의 환경이 악화되니 땅에서 살면서 빗물을 침투시키고 땅에 숨구멍을 뚫어주던 작은 동물들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도시의 땅은 사시사철 메말라 가고 있으며, 메마른 땅을 밟고 사는 도시인들도 함께 고사(枯死)해가고 있다.

한때 세계의 ‘악의 축’이라고 여겨졌던 쿠바가 경제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의 원조나 정치의 힘이 아닌 바로 이 작은 미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쿠바의 도시농업은 획일적이던 쿠바의 농업구조를 바꾸어 놓았으며, 도시농업의 성공으로 시장경제의 구조를 변화시켜놓았다. 그 어떤 독재자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지렁이의 힘으로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도시농업과 유기농의 롤모델이라면 쿠바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지렁이 한 마리가 일으키는 힘은 우리 인간의 힘보다도 크다. 맨발로 땅을 밟고 대지의 기운을 느끼다 보면 작은 벌레 하나도 인간과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땅에 물과 공기를 통하게 해야 한다. 숨 쉬는 대지는 인간과 동물, 식물 그리고 먼 미래까지 우리를 행복한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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