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조의 우리문화편지]

오늘 생각해보는 마중물의 슬기로움


언뜻언뜻 가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는 오늘도 아직 남은 더위가 극성을 부립니다. 내일이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이고 귀뚜라미가 우리의 애간장을 끊지만 아직 여름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흔히 보던 펌프를 기억하시나요? 펌프는 압력작용을 이용하여 관을 통해 물 등을 이동시키는 기계를 말하지요. 다시 말하면 땅속에 있는 물을 땅 위로 끌어올리던 것입니다.

어렸을 적 널찍한 마당이 있던 집에는 으레 녹슨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 펌프는 여름철에 정말 유용했지요. 우리는 한여름 온몸을 땀으로 뒤집어쓴 채 펌프로 달려갔고, 펌프에서 물을 퍼내어 등목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의 시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그 순간만은 별다른 피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소박한 피서법이었지요.

그런데 이 펌프는 마중물을 넣지 않으면 절대 땅속에 있는 물을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마중물이란 펌프에서 물이 안 나올 때에 물을 이끌어 올리려고 위에서 붓는 물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땅속에 있는 물을 마중하러 가는 물이지요. 그 귀한 물을 쓰려면 ‘마중’이란 것도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멀리서 귀한 분이 오시면 마중을 나가야 했고, 아버지가 나들이하셨다가 돌아오시면 문밖에까지 나가 마중을 합니다. 남에게 감동을 주려면 먼저 마중을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나는 오늘 그 누구를 마중했는지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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