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조의 우리문화편지]

더위를 처분하고 가을의 길목에 접어드는 처서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 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민요의 내용입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곧 애끊는 톱소리로 듣는다는 참 재미있는 표현이지요. 절기상 모기가 없어지고, 이때쯤 처량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시기의 정서를 잘 드러냅니다. 이제 자연의 순리는 여름은 밀어냅니다.

처서(處暑)는 24절기의 열넷째로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부르지만 낱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처서 때는 여름 동안 습기에 눅눅해진 옷이나 책을 아직 남아 있는 따가운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합니다. 또 극성을 부리던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해충들의 성화도 줄어듭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에 천 석 감한다’고 하여 곡식이 흉작을 면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전해지고 있으며, 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제 가을의 높은 하늘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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