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조의 우리문화편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죽었지만, 영원할 허균의 사람 향기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 밝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고 / 비취색 치마엔 아직 향내가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무렵 / 누가 설도의 무덤 곁을 찾아오려나

위 시는 정신적 사랑을 나누었던 부안 기생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균이 남긴 ‘계량(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시입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소설가인 교산 허균(許筠, 1569~1618)은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 시대 대표적 걸작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과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의 책을 남기고 있습니다.

허균은 매창을 사랑했지만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고 정신적인 교감만 나누었다고 하지요. 매창의 진짜 연인은 천민 출신으로 뛰어난 시인이었던 유희경이었습니다. 허균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계생은 부안의 기생이라. 시에 밝고 글을 알며, 노래와 거문고를 잘한다. 그러나 절개가 굳어서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하고 허물없이 친하여 농을 할 정도로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지만 지나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오래도록 우정이 가시지 않았다.”

비록 기생이지만 매창의 재주와 인간적 향기를 아껴 우정을 나눈 허균은 1618년(광해 10) 8월 24일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사람 향기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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