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조의 우리문화편지]

국치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경술국치일 기억하기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제국주의 강요에 의해 ‘병합조약’이 공포된 경술국치일입니다. 경술국치의 시작은 1910년 6월 30일 일본이 한국의 경찰권을 빼앗은 다음, 7월 12일 ‘병합 후의 대한(對韓) 통치방침’을 마련해서 조선통감으로 임명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이를 가지고 부임케 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한일병합 공작을 전개했습니다.

8월 16일 데라우치는 총리대신 이완용과 농상공대신 조중응을 통감관저로 불러 병합조약의 구체안을 몰래 논의하고, 18일 각의(閣議)에서 합의를 보게 한 다음 22일 순종황제 앞에서 형식만의 어전회의를 거치게 하고 그날로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을 완료했지요.

조약의 조인 사실은 1주일간 비밀에 부쳐졌다가 8월 29일 이완용이 윤덕영(尹德榮)을 시켜 황제의 어새(御璽)를 찍어 이른바 칙유(勅諭)와 함께 병합조약을 반포(頒布)했습니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지요.
이완용과 데라우치가 조인을 한 통감관은 남산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술국치를 잊지 말아야 할 그곳은 아무 표석도 없이 버려두었습니다. 그러다 100년 만인 2010년 8월 29일 서울 남산 ‘통감관저 터’에서는 ‘경술국치’ 현장임을 알리는 표석 제막식이 강제병합100년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상임대표 이해학, 이하 ‘한국실행위’) 주최,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주관으로 있었지요. 아침부터 하염없이 내리던 비는 행사 시간이 다 돼서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아니 그날의 치욕을 통곡하듯 더욱 세차게 내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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