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기도는 때 아닌 역사인식 논쟁에 휩싸여 있다. 경기도가 도내 공직자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고취한다는 명목으로 2여년에 걸쳐 5천 여 만원의 용역비를 들여 발간한 공무원교육교재 ‘경기도현대사’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이영훈교수가 집필한 ‘경기도현대사’ 1편(대한민국편)에는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된 것은 세계가 공인하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적었다. 또한 5.16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환영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했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그로인해 유신체제와 신군부에 저항한 민주화 세력은 급속히 반미 세력으로 변해 갔다”고 기술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공무원노조 경기도청지부와 경기도의회 일부 의원 등은 즉각 반발하며 교재의 폐기를 요구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영훈교수가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전문성이 부족하고, 편향되고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종일(從日)극우사학자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도의 현대사 교육은 중단되어야하고 발간한『경기도현대사』도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의 전공은 한국경제사로, 역사학과 무관한 경제학자라 함은 경제학과 역사학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판단이라며 각계가 제기한 문제를 조목조목 적시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나 기술(記述)적 오류는 없다고 버티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역사관이 옳고, 잘못이 없다는 얘기다. “정신대는 조선총독부의 강제 동원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공창(公娼)이라고 발언한 그의 지극히 편향되고 왜곡된 역사관을 또다시 적나라하게 나타낸 셈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누차 강조해 왔지만 대한민국은 1948년에 건국된 것이 아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들도 수없이 많다.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란 것이 그 중 하나다. 1919년 3월 1일 '독립국'임을 선언한 독립선언이 발표된 후, 한 달여 만인 4월 중국 상하이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서기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국호인 '대한민국'을 연호로 사용했고,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했다. 이후 임시정부에서 생산한 모든 문서는 모두 '대한민국'이란 연호로 표기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똑같은 연호를 사용했다는 역사적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관계를 밝혀 놓았다. 1948년 7월 17일에 공포된 제헌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년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 했고, 1987년 10월 29일에 공포된 제6공화국 헌법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내용을 명기해 놓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새로 세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그대로 잇고 있다는 사실을 헌법에 분명히 밝혀 놓은 것이다.

아울러 반이승만 세력을 모두 좌파로 몰고 가는 시각에 대해서도 참으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켜 ‘트러블 메이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두고 민족진영에서 비난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위임통치 청원’이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려다 불발되자 그는 정한경과 함께 윌슨 미국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에 ‘위임통치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는 완전독립은 중간단계로 일본의 지배 대신 미국의 지배를 받자는 것이었다. 이런 친미사대주의 내용이 외신을 통해 알려지자 민족진영에서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3.1운동을 계기로 표출된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위축, 손상시키는 것으로 민족진영으로서는 묵과하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가 곡절 끝에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1922년 6월 임시정부 의정원(현 국회)의 불신임안 가결에 이어 3년 뒤엔 탄핵까지 된 사실이다. 탄핵요지는 한 마디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유기 및 업무태만, 파벌 짓기와 갈등조성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해방 후 지도자로 부상돼 신생 대한민국에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재임 내내 독선과 고집으로 일관했으며, 정권 연장을 위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해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짓밟았다. 또 집권 기간 중에 만연한 부패와 3.15부정선거 등으로 인심을 잃어 결국 해외로 망명한 뒤 살아생전에 돌아오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수구보수진영은 그를 ‘건국의 아버지’ ‘국부(國父)’로 추앙하며 광화문에 그의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무덤에서 불러내어 ‘건국의 아버지’니 뭐니 하며 찬양하고 미화하는 나라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요즘 경기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때 아닌 역사인식 논쟁은 김 문수 도지사의 책임이 크다.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 문제가 많다”며 공무원 교재를 따로 만들라고 지시한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 국사 교과서가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잘못됐단 말인가.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토론에 붙이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무지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런 역사 인식을 가지고도 대권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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