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가난한 예술=연극’이라고 하면서도 많은 연극인이 연극판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연극인과 예술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도는 일반 직장인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이런 것이 연극이 가진 생명력이자 마력인 듯하다. 연극현실이 어려운데도 개인이 극단을 30년 이끌어 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극단 성(城)은 수부도시-수원 연극예술의 상징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해도 척박한 연극예술의 토양 속에서 홀로 버텨온 김성열 대표에게 찬사를 보내야 한다. 불모지 수원의 연극을 일으키고 올곧게 지키며 지역연극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극단 성’은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상징한다. 그 성은 단순히 차단벽이 아니다. 무대를 통해 배우와 시민관객이 소통하는 통로다. 연극은 행위이자 역동적인 예술이다.

열흘 전에 ‘극단 성’은 1935년 나혜석 원작 희곡 ‘파리의 그 여자’를 초연작품으로 30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렸다. 수원에서 태어난 근대기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최초의 전업화가’ 나혜석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희곡이 삼천리 잡지에 게재됐다. 작품발표 후에 한 번도 공연된 적이 없었다. ‘극단 성’이 무대에 첫발을 디디게끔 했다. 불꽃처럼 치열한 삶을 살면서 남긴 나혜석의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는데 더욱 뜻이 깊다. 특히 수원연극사와 함께 ‘극단 성’ 창단 30주년을 정리한 5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극단 성 30년’의 두툼한 역사책도 발간했다. 소극장 하나 없던 시절, 아등바등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을 이어온 희곡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성열 대표와 출연 연극인들의 땀과 눈물과 치열한 고민과 열정의 흔적들이 행간(行間)마다 진하게 배어 있다. 이 또한 수원연극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며 역작이다.

관객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연극은 어려운 예술이다. 뮤지컬 정조대왕, 혜경궁홍씨, 노작 홍사용, 다산 정약용, 정월 나혜석 등 수원의 근현대 역사적 인물이 무대에 올려 지면서 시민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늘 지역과 관련된 작품만을 고집했다. 지역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했기에 그렇다. 수원은 해마다 ‘수원화성국제연극제’를 개최하고 있는 도시다. 이 연극제도 1996년 ‘극단 성’의 기획으로 출발했다. 수원화성축성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처음으로 펼쳐져 이제는 명실상부한 지역연극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5월로 열일곱 번째 맞이할 정도로 성장했다. 한 연극인의 집념이 국제연극도시-수원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당시 중앙지가 지역 연극에 관심을 보일 정도로 크게 보도된 바 있다. 그만큼 ‘극단 성’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떤 예술이든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가 흐르고 있다’는 괴테의 말처럼 지금의 성과는 앞선 이들의 도전과 실험이 있었기에 가능 한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감동을 전한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수단이다.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모든 예술의 궁극의 목적이다.

이젠 소수의 향유자 중심의 엘리트예술이 아니라 우리들 일상으로 젖어드는 시대다. 생활예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연극이, 그림이, 음악이 왜 좋은지 알게 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알게 되면 좋아지고, 좋아지면 뭐라도 하게 된다. 돈과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인내심 부족이 큰 문제다. 물론 모든 장르의 예술은 감상에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조금씩 비밀의 문을 열어준다. 인류 감성의 꽃이며 열매가 예술이다. 예술은 움직이는 인문학이다. 연출가이자 ‘극단 성’을 이끄는 영원한 연극인 김성열 대표는 ‘연극에 미쳐 주위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하늘만 쳐다보고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지 못했던 세월들이 너무 많았다.’고 토로한다. 막이 내림과 동시에 스러지는 연극의 일회성은 유한한 인생과 그 성격이 가장 가까운 예술이다. 예술은 끝에서는 ‘자기 그릇’에서 나온다. 그래서 열정을 갖고 늘 그릇을 키워가야 한다. 주변에 만개한 벚꽃은 겨울 추위의 선물이다. 기온이 높을수록 봄꽃이 잘 개화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을에 맺힌 벚나무의 꽃눈이 이듬해 봄에 피어나려면 일정기간 동안 추위를 겪어야 한다. 예술도 이와 같은 이치다.  ‘극단 성’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또 다른 변화를 향해 맹렬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이제껏 창단 이래 날개가 꺾인 적이 없듯이 관객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들을 말해줄 수 있는 연극을 계속 펼쳐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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