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연극은 인류탄생과 함께해 온 예술이다. 가장 원초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장르다. 8월장마를 피해 5월로 앞당긴 올해 ‘수원화성국제연극제’가 또 비를 맞았다. 수원문화재단이 새로운 예술감독을 임명하여 ‘이제껏 보다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즐거움에 푹 빠뜨리겠다.’는 연극축제가 5일 중 피날레를 이틀 앞두고 비 때문에 다소 아쉽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연극제는 몇 가지 점에서 시민관객이나 연극인들에게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연극축제였다. 불, 영상, 소리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스페인, 호주,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대만, 벨기에 7개국에서 8개의 해외작품과 공모를 통해 선정된 9개 국내작품이 볼거리를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그렇다. 한 점 흠이라면 스페인 ‘마법의 밤’ 연극에 사용되는 무대소품용 ‘불꽃’이 문화재보호구역 내에서 화재위험 때문에 완구용 불꽃으로 대체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축제 이튿날 무대를 만석공원으로 옮겨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와 함께 쉴 새 없이 터지는 불꽃들이 장관을 이루는 스페인 전통 작품을 다음날 까지 연이어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앞으로 더 세밀하게 공연장소와 공연작품을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셈이다.

수원시내 일원에 걸쳐 진행되어 오던 연극제를 올해는 행궁광장으로 집중화 시킨 것은 시민관객이나 진행자들에게도 효율적이었다. 1,500석의 메인무대를 비롯한 부무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천막극장, 행궁길 노천무대, 야외시민카페와 문화재단 영상실, 기획전시실 등이 연극축제의 집중도를 높여 열기를 북돋우는데 기여했다. 

국제연극제 이름에 걸맞은 대형 화제작품 공연도 중요하지만 훨씬 공연이 풍성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 것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무대다. 시민프리지 ‘펼쳐라! 놀아보자’ 와 시민희곡낭독공연이 바로 그것이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다소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시민공동체 연극과 외발자전거체험, 꿈나무 벼룩시장, 스테츄 마임체험 등도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처음으로 진행된 ‘드라마독백(獨白)경연대회’는 청소년들에게 ‘내가 주인공이 되어 공연으로 소통하는 배우’가 되는 체험의 무대였다. 30여 명이 젊은이들이 숨은 끼를 발휘하고 많은 관객이 몰릴 정도였기에 그렇다. 연극대사만이 아니라, 개그나 장기, 영화 대사도 가능토록 확대하면 좋을 듯싶다. 배우란 다 자란 어른에게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누구나 어설픈 면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에 우습게 생긴 모자를 쓰고 실제의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연기했던 경험을 누구나 다 갖고 있지 않은가.  

연극에서 희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연기(演技)를 비롯한 연출, 무대장치, 의상, 조명, 음악 등은 모두가 문학작품인 희곡을 연극적으로 구상화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극을 읽다. 연극에 빠지다’라는 콘셉트로 시민배우들을 선발하여 한 달여간의 연습을 거쳐 재미난 고전을 선택해 펼친 시민희곡낭독공연은 시민과 함께하는 연극축제의 뜻을 더욱 깊게 살린 프로그램이었다. 진정한 우리 연극이 창조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우리 희곡이 나와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다만 음향이나 관객들에게 정확한 대사 전달이 부족한 점 등은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할 점이다.

수원화성국제연극제가 우리의 ‘놀이문화’와 ‘축제적 요소’를 끌어들이는 것은 시민관객들에게 흥겹고 즐거우며 재미를 만끽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동경하고 새로운 것만을 내세우려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바람에 매혹되거나 휘말려 가면 안 된다. 서구연극의 아류(亞流)가 되는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연극적 유산을 어떻게 새로운 연극으로 창조해 나가느냐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때다. 수원은 정조가 세운 개혁도시요, 효의 도시다. 도시의 정체성도 한껏 세울 수 있는 그야말로 ‘수원화성만의’ 국제연극제로 발돋움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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