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삐뚤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경희대 교수들과 특별취재팀을 구성하여 5회에 걸쳐서 보도했던 중학생 인성실태는 심각성 그 자체였다. 책임감, 남을 배려하는 마음, 사람 됨됨이는 낙제수준이었다. 최근 중학생을 통해 조사해본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10명중 6명 이상이 10억을 준다면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통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만약에 어른을 대상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일까? 흥미로운 일이다.

매일 터지는 사건 그리고 부정과 부패, 사실 아이들이 배울 것이 없다. 도독 놈 부모가 아이들에게는 도둑놈 되라고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고급의 도둑질을 하고 법의 심판을 받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뭐니 뭐니 해도 가정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집에 있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많은 부모들은 불안해 한다. 학교에서의 야간 학습, 도서관, 학원 등에 있어야 안도가 된다.

부모 세대들이 지나친 생존경쟁 속에서 자라온 터라 토양 자체가 경쟁적이고 모든 일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 직장, 사회생활 자체가 냉엄한 승부의 세계이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잘못된 인성이 우리들 부모에게는 박혀 있다. 결국 그러한 잘못된 인식이 자녀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전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말라고 무언 중에 가르친다. 특히나 이러한 악습은 자녀를 향하여  높은 기대감을 갖게 하며 강요가 되고 주입식이 되고 오로지 이기는 것만을 강조하게 된다.

대화를 통한 자녀와의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인 방법이다. 잘못된 민주주의인 단답식의 대화나 진위형의 대화에 익숙한 우리 자녀를 인내와 지혜를 갖고 차차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 옛날 밥상 머리 교육이 생각난다. 오손도손 화로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훈훈한 가정의 모습이 그리운 것이다. 오로지 성공이나 실패가 관심사인 현대의 모습이 슬프기 까지 하다.

우리 자녀들에게 성공과 실패의 의미를 지나치게 구분하여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까? 역설적으로 하나의 일류대학의 입학이 꼭 성공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부모들도 반성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기만 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하는 것 만큼 성장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들은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보자 어른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눈높이를 맞추어가는 순간, 우리 아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 지금 지나친 성적순에 아이들은 마음이 피폐해져 있다. 회복과 치유가 절실하다. 가정을 거부하거나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들,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모른 상태에서는 치유는 불가능하다.

장래 희망이 이른바 거창하지 못하다고 꿈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가 세계적인 지도자, 위대한 정치가, 학자, 과학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나름대로의 사회에서의 작은 기능을 담당할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하루 빨리 이러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내 아이의 꿈이 소박하다고 탓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오늘부터라도 내 아이의 진솔한 꿈을 말해 보도록 대화하고  칭찬하며 진정한 고민이 무엇인지를 말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이며 꿈을 이루기 위해 부모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인성이 잘못된 것을 전적으로 아이들 자체로만 그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부모들이 내 아이와의 눈높이를 잘 맞추어가며 생활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혜안을 갖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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