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

   
▲ 정지환 대표기자 ⓒ김진석

판결(判決)은 말 그대로 '마지막'을 의미한다. 더욱이 '솔로몬의 재판'처럼 명판결일 경우에는 재판 과정에서 제기됐던 온갖 논란과 갈등과 오해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봄볕의 잔설처럼 사라지는 법이다.

마치 먹이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거리며 포효하던 두 마리 맹수가 온순하게 겨울잠을 자러 가는 것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눈치 없이 토를 달며 불만을 표출했다간 법의 제재 이전에 민심의 외면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도리어 더 큰 논란의 '도화선'이 된 것처럼 보인다. 우선 충청권의 민심이 심상치 않거니와, 이 점잖기로 유명한 양반 동네에서 요즘 '충청 5적'이라는 섬뜩한 신조어가 화제다.

항의집회 때마다 화형식의 대상이 된 이 충청 5적의 족보에는 "헌법재판소, 한나라당, 이명박 서울시장, 조선일보, 동아일보"(시사저널 785호 24쪽 참조)가 이미 입적 신고를 마친 상태라고 한다. 겨울잠은커녕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다.

헌재 비판 대열에는 헌법학자와 시민단체까지 합류하고 있다. 헌법학 전공자인 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지난 11월 9일 참여연대 회원 특강에서 '심판론(審判論)'으로 헌재의 위헌 판결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심판은 게임을 진행시키고 분쟁 발생 시 참가자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룰을 적용해 분쟁 해결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면서 "그런데 최근 헌재가 관습헌법 논리를 내세운 것은 심판이 스스로 게임의 룰을 그때그때 만들면서 게임 참가자들의 행동을 자의적으로 재단한 것과 같다"(시민의신문 571호 2쪽 참조)고 지적했다.

강연이 끝난 뒤 일반 시민들의 질문과 의견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한 시민의 적나라한 발언이 청중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헌법재판관들은 9명 모두 서울 출신이며, 강남 지역에 살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만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등 우리들과 사는 공기층이 완전히 다른 것 같다"면서 "관습헌법이란 이상한 이론을 동원한 것도 그렇지만 1명만 빼고 무려 8명이나 위헌 결정에 찬성한 것은 어쩌면 그들이 그것을 '양심에 근거한 판결'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세상에는 두 명의 '심판'이 있거니와, '법'(=사법)과 '말'(언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생래적 이유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과거의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그들은 '가장 신뢰받는 집단'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1999년과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을 거치면서 언론이라는 심판이 먼저 사망하고 말았다. '언론의 자유'와 '탈세의 자유'도 구분할 줄 모르는 일부 족벌신문의 철면피한 행위를 지켜보면서 언론에 대한 국민의 환상이 한순간에 깨진 것이다.

사실 일반 국민의 10배를 넘는 병역면제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족벌신문 사주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는 (책임은 안 지고 권리만 내세우는) 특권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 10월 10일자 <한국대학신문>에 발표된 전국대학생 의식조사에서 정치인과 경제인에 이어 언론인이 '가장 불신하는 집단' 3위에 오른 것이 그 변화된 세태를 반영한 '리트머스 시험지'일 것이다. 지금 헌재의 모습에서 '불신 받는 심판'을 자초한 사법부의 일그러진 초상을 읽었다면 논리적 비약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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