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예총 회장
산에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 요즘, 수원화성행궁광장에는 국화 향(香)이 흩날렸다. 수원농생명과학고 국화전시회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행궁광장에서 사흘간 시민과 함께하는 꽃 잔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가을을 상징하는 꽃은 단연 국화가 으뜸이다. 5천여 점의 국화와 50여 점의 분재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바퀴살 모양에 국화 한줄기에 80여송 이상이 꽃을 피우는 대국 다륜대작(多輪大作), 코끼리 모양의 국화 코끼리토피어리, 동양적인 자연미를 느끼게 하는 낭떠러지나 절벽에 걸쳐 피어나는 현애작(懸崖作)이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다양한 동물형상으로 만든 조형작(造形作) 토피어리는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작은 국화를 이용하여 삽수(揷樹)채취에서 전시까지 약 300일이 소요되는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다. 코끼리, 하트, 지도 모형이 전시됐다. 대자연의 풍치를 모방, 축소하여 분에 옮겨 놓은 소나무, 소사나무 분재전시코너에는 시민들이 ‘아하’하는 감탄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올해 39회를 맞는 농생고 국화전시회는 또 하나의 색다른 축제다. 학교 울안에서 집안잔치로 끝나지 않고 학교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와 시민과 함께 하는 전시회라 더욱 각별하고 뜻이 깊다. 농고다운 발상이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문화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야 한다. 77년 전통을 가진 학교가 아닌가. 더욱이 수원은 예전만 해도 시민헌장에 ‘수원은 농업과학도시요’라고 시작할 정도의 농업과학도시였다. 개혁군주 정조대왕이 둔전법을 시행하며 만든 서둔(西屯)과 북둔, 그곳이 국립농장터가 아닌가. 그 후 모범시험장, 농촌진흥청으로 바뀌면서 식량자급의 숙원인 녹색혁명을 일으킨 터전이다. 그 옆에는 농학인재를 키운 100년이 넘은 서울대 농대가 자리한 곳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산업이 농업인 시대에 수원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생명산업인 농업교육기관으로 중등교육기관인 농고, 고등교육기관인 농대, 평생교육기관인 진흥청이 계열화되어 자리했던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농대는 서울 관악캠퍼스로 옮겼고 농업의 산실, 농촌진흥청마저 내년이면 전주로 이전한다.   식품의 다양화와 서구 식품의 범람으로 우리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어 농업학교마저 관심 밖으로 밀리고 있어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수원농생명고의 국화전시회는 의미를 더해 줘서 반갑다. ‘문화’는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지역’은 삶의 소중함을 깨우쳐준 스승이다. 두 개념이 과거에는 독립적이었다. 이제는 뗄 수 없는 묶음이다. 문화가 지역을 가꾸고, 지역은 문화의 디딤돌이 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지적 엘리트를 키워내는 일인가? 아니다. 진정한 교육은 각자에 잠재해 있는 능력을 개발하여 전문인으로서 개성 껏 사회를 살아가게 만드는 일이다. 개인의 특징적인 재능을 찾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이다. 특성화된 교육과 교육환경만이 경쟁력이 된다. 지역 특성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엘리트나 일류를 지향하는 경쟁력이 아니라 개성과 특성으로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농고 교육의 참 맛이 거기에 있다. 국화는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높아서 수요가 많다. 찬란한 봄과 지루했던 긴 여름 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외 속에서도 조용히 자신을 가꾸어 온 그 은근한 끈기 때문이다. 미당 서정주시인은 ‘내 누님’ 같은 인고(忍苦)의 여인상이라고 비유했다. 가을의 대명사, 국화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 묵객들의 단골주제가 된지 오래다. 동그란 꽃송이가 높다랗게 달려 있음은 하늘을 본뜸이다. 순수한 황금색은 땅의 빛깔이고 일찍 심어 늦게 핌은 군자의 덕이다. 서리를 이겨 꽃을 피움은 강직한 기상이요, 술잔에 동동 떠 있음은 신선의 음식이다. 학생들이 한 해에 걸쳐 재배하여 시민과 함께하는 농생고 국화전시회를 개최하는 뜻이 여기에 담겨져 있는 듯해서 반갑다. 또 즐겁다. 

이른 봄 시민들에게 삽수를 유상(有償)이든 무상이든 농고가 공급하면 좋겠다. 1년 동안 잘 길러 국화전시회에 출품케 하여 시민이 재배한 ‘국화콘테스트’를 하면 어떨까. 꽃의 수요는 날로 늘지만 소모품을 ‘만든다’는 상업성만 남고 예술적인 탐구(探究)나,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있어 그렇다.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다. 한 송이 아름다운 국화앞에서 굳게 닫혔던 마음도 활짝 열리는 시민들의 흐뭇한 정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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