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계에 의하면 초등학생 280만명, 중학생 180만명, 고등학생 190만명 등 650만명의 학생이 존재한다. 어느 가정치고 소위 학생과 관련 없는 집은 하나도 없다. 사회의 급속한 변천과 더불어 청소년문제는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황당하게도 어떤 때는 예측이 불가능해 아이들의 행동이 어른들을 당황하게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각이나 가치를 이해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늘 갈등이 존재한다. 대화가 어렵고 소통 역시 어렵게 느낀다. 누구에게나 오는 사춘기가 시기적으로 빨리 온다거나 그 증상이 심해 해당 부모는 대처를 잘하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특히나 그 시기가 길면 길수록 큰 홍역을 치른다. 저마다의 개인차에 따라 심한 풍랑과 파도에 힘들어한다. 이른바 초딩 6학년이나 중딩은  공산당보다 더 무섭다고 말한다. 폭력과 각종 범죄가 저연령화되어 가고 있다. 매년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등지고 떠난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안식을 하며 발붙일 곳은 없다. 그들의 생각과 실제는 그리 만만치가 않다. 가정과 학교 밖의 환경은 각종의 위험과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학교 밖의 아이들을 감싸고 보듬어 주고 인정하는 곳은 많지 않다. 올가미와 덫은 오히려 그들을 범죄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과연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인가? 그들도 바르고 틀린 것을 구별할 줄 안다. 어떠한 것이 바른 가치 인지를 그래도 알고는 있다. 그들의 생각을 어른들의 기준과 범주로는 알기가 어렵다. 심층적인 대화와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공부, 상급학교 진학이라는 명제만으로는 소통이 어렵다. 과거에는 어른들의 권위가 있어 좋게 말해도 아이들은 말을 잘 들었다. 훈계라는 명목으로도 그저 잘 통했다. 어른이라는 존재 가치로 그들을 선도하거나 권위로 그들을 다스릴 수 있었다.

흔히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학교가 인성교육을 안 하고 있다고 보는 것보다는 쉽게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방법과 내용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먼저는 우리 아이들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아이들의 생각을 폭넓게 수용할 태세를 가져야 한다. 은근히 어른들이 그들을 지배하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교권이냐? 학생의 인권이냐? 를 두고 힘든 거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다리는 것과 참아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학교 여건이 그렇지 못한 거 충분히 이해된다. 학교라는 단체생활에서의 무질서와 크고 작은 학교폭력과 흡연 등 학생의 일탈행위는 정도를 넘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심한 경우 흡연만 하더라도 이제 초등생으로 하향되어가고 있다. 사실 학교가 그동안 지나치게 마치 군대와는 같은 조직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기성세대는 일사천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마치 기계와도 같아서 결과가 일순간에 눈에 보일지는 모르지만, 이것 또한 잘못임을 인정해야 한다.

결과만을 중시할 때 억압이나 통제라는 도구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행복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어떤 때는 쓸데없는 것 같고 허무맹랑한 생각조차도 인정해 보자. 네가 아직 어리니까 라는 말이나 어른 되면 알게 돼 등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은 아이들로 하여금 확신보다는 의구심만 갖게 된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자. 그러면 그들의 자아 정체감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먼저는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아이들의 저마다의 개성과 처지 그리고 형편을 이해해 보자. 가정교육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 옛날 밥상머리 교육을 장소는 다를지언정 그 내용과 방법을 살려보자. 세대를 뛰어넘는 소통은 어쩌면 현대가 당면한 긴급한 과제가 아니겠는가? 자녀관, 청소년관을 조금은 달리해볼 것을 주문한다. 어떠한 상황이든 그들을 가능성의 존재로 그들을 보듬어주자. 여기에는 상당한 우리 어른들의 양보가 필요하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말이다.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의 구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설령 실패할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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