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391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3월 3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열린 강연을 정리한 이 기사가 지역 주민들의 교양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 김용운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대한민국은 독립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반공(反共)'과 '반일(反日)' 노선을 견지해 왔거니와, 알고 보면 우리는 타자에 대한 '안티(Anti)'에서 나라의 건설과 성장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던 셈이다.

그러나 지난 60년 동안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6·15남북공동선언과 2002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반공은 '민족화합'으로, 반일은 '공동번영'으로 승화된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안티는 '대안(Alternative)'의 어머니였는지도 모른다. 김용운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한양대 명예교수)도 "반일을 반드시 나쁜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일의 긍정적 의미도 분명히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반일교육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구의 근대 지식과 문화를 전적으로 일본을 통해서 기성복 빌려 입듯이 습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됐다면 우리의 전통과 서구의 근대 문화를 접목시키는 주체적 실험의 기회를 아예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예컨대 1972년 뮌헨올림픽 전야제에서 오페라 '심청'을 연주해 동양과 서양의 소통을 시도했던 윤이상도, 종교와 인간의 관계를 한국적 시각으로 천착한 소설 <순교자>로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김은국도 없었을 것이다. 반일이 있었기에 한류(韓流)도 가능했다고 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어쩌면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기 위해서라도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의 문화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확히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원형(原型)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읽어내면 한류의 원리를 이해하고 효과적인 전략도 짤 수 있다.  나는 두 나라의 원형을 '게'와 '새우'에 비유하고 싶은데, 조상은 같으나 다른 종으로 진화한 두 생물은 한국과 일본을 빼 닮았다. 단적으로 한국에는 사랑(愛)이 있지만 일본에는 그것이 없다. 반면에 일본에는 오오야케(公)가 있지만 한국에는 그것이 없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 처자를 죽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국사(國師)'가 되기 위해 미녀의 유혹을 이겨낸 시바 료타로, 모기가 물어도 개의치 않고 논어를 읽은 요시다 쇼잉은 '애(愛)가 없는 공(公)'으로서의 일본을 상징한다."

   
▲ 김용운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김 위원장은 일본 열도에 욘사마 열풍을 몰고 온 드라마 '겨울연가'가 성공한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公)을 위해서라면 자살공격과 집단할복도 마다하지 않도록 교육받았던 일본의 남성들은 아내에게 절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결국 애(愛)야말로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다시 말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의 어떤 지식인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욘사마 열풍은 일본 여성들의 일본 남성들에 대한 복수'라는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한일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야 하는 현재적 상황에서 일본의 공(公)보다는 한국의 애(愛)가 좀더 인류 보편의 가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지적이다. 욘사마 열풍으로 상징되는 한류가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상대방의 좋은 것을 편견 없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교류 이후였다. 욘사마는 '현대판 조선통신사'라고 할 수 있거니와, 조선통신사를 통한 선진문화의 전수가 중단되자 전쟁과 식민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이는 일본 극우파가 만든 역사 교과서의 채택 비율이 0.4%에 불과한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따라서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문화교류와 시민교류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 중의 하나가 '어머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앞으로 한 달 동안 진행될 인간개발연구원 조찬강연의 일정과 주제와 강사는 각각 다음과 같다.

△3월 10일: 국제경쟁시대의 시장경제와 새로운 경제질서(강철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3월 17일: 유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재양성의 과제(이철우 롯데쇼핑 마트사업본부 사장) △3월 24일: 유럽 대체의학의 약진과 KANNE사의 100년사 결산인 빵산균의 자연치유 요법(가이스바우어 마르쿠스 독일 말테저병원 원장) △3월 31일: 글로벌시대 대학의 수월성과 한국의 국제경쟁력(정창영 연세대 총장) (전화문의 02-2203-3500)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김용운 위원장의 삶과 이력

▲ 일 와세다대 광산과 수학(1945-47)
▲ 조선대 수학 학사(1958)
▲ 미 어번대 수학 석사(1959)
▲ 캐나다 앨버타대 수학 박사(1967)
▲ 한양대 수학과 교수(1969-93)
▲ 한양대 도서관 관장, 자연대학장, 한국전통과학연구소장.       기초과학연구소장, 대학원장(1972-90)
▲ 한국수학문화연구소 소장(1993-현)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2000-03)
▲ 한양대 명예교수(현)

<상훈> 국민훈장 석류장, 대한수학회 공로상 외
<저서> 수학사 대전,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구조, 한국인과 일본인, 한국의 수학사, 한·중·일의 역사와 미래를 말한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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